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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뜻하지 않은 일본 여행
2008.12.2
생각지도 않은 일본 여행을 가게 되었다. 대만 외무부에서 일본과 문화교류를 하는 목적으로, 남편과 또 다른 4분의 화가를 초청해서, 동경에서 전시를 가진다고 한다. 몇 달 전부터 주최측에서 화가들이 전시 오프닝에 꼭 참석하기를 바래서, 잘 다녀오라고 했었다. 다음주에 일본으로 출발 예정일이 다가오니까, 참석 화가들의 반려자들도 같이 동행해도 된다고 알려준다. 그 말을 들은 남편은 같이 전시에 참석하는 게 어떠하겠냐고 나의 의견을 물어본다.
나는 아직 일본을 가보지 안았기 때문에,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가 보아야지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내 민족에게 잔악하고 무자비한 짖거리를 한 일본이라고 생각하면, 그러한 마음도 달아나 버린다. 그러면서도 내 집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전자제품은 일본 제품으로,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마음 속에서 가지고 있는 좋지 않은 감정과는 다르게, 현실적으로는 상반된 것 같다. 아무튼 세계 경제 강대국으로 발전한 일본이, 얼마나 잘 사는 나라인가 나의 눈으로 보고도 싶기에, 혼쾌히 따라 간다고 결정을 내려 주었다.
일본 도쿄에 머무르는 짧은 기간 동안, 그 곳 대사관에서 현재 일본 경제의 상징이라는 록본기 힐스와 여러 미술관을 데리고 다닌다고 한다. 그 중 하루는 자유시간이 주어지기에, 요즘 일본 관광 책을 들여다보면서 가 볼만한 곳에 밑줄을 그어두고, 남편이 이끄는 국제 채묵 협회의 일본 회원도 우리를 보러 멀리서 온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말로 인사도 외우느라, 지금 내 책상 위에는 느닷없이 일본에 관한 책들이 널브러져 있다.

108. 고양이의 죽음
2008.11.26
저녁을 먹고 바람이 몹시 부는데도, 강아지를 운동을 시키러 아파트 정원으로 내려갔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구석진 곳을 지나치려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얌전히 누워있다. 일반 고양이들은 잠을 늘어지게 자다가도 사람이 온 기색을 알면, 손살같이 도망을 치는 것이 주특기인데, 지금 내 앞에 누워있는 고양이는 일어날 생각도 아니한다. 일어나라고 왔다 갔다 하다, 다시 맴을 돌아도 그냥 누워만 있는다. 심상치 않아서 고양이 몸에 손을 얹어 보았더니, 몸이 굳어 있는 것 같아서 섬뜩해 일어났다. 그리곤 어젯밤 생각이 떠오른다.
늦은 밤에 '야옹~ 야옹~'하는 소리가 현관문 밖에서 들여온다. 3년 전 어느 날 오밤중에, 고양이 울음소리 때문에 집안 구석구석 고양이를 찾아다니느라, 난리법석을 떨었던 생각이 난다. 밖에는 그 날처럼 힘센 바람이 불어댄다. 그때를 떠올리면서 현관문을 부리나케 열고 옥상 문 쪽을 향해 올려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열려있는 문틈으로 고양이란 놈이 얼굴만 빠끔히 내밀고, 나를 보자마자 쏜살 같이 도망을 친다. 흰색 털 위에 검은 반점이 눈에 붙어있는 것을 보니, 3년 전에 나도 모르게 정을 주었던 그 아기 고양이 생각이 떠오른다. 현관문을 닫으면서 다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면, 먹이를 계단 위에 같다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잠을 잘 시간인데도 아무런 기색이 없어서 대수롭지 않게 잊어버리고 잠을 청했다.
싸늘히 죽어있는 고양이를 보니, 갑자기 어젯밤에 나를 보자마자 도망쳤던 그 고양이가 틀림이 없다. 춥고 배가 고파서 옥상 난간 위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헛발질을 해서 아파트 바닥으로 떨어져 죽었다는 생각이 들어진다. 내 탓처럼 가슴이 아려온다. 집으로 발길을 돌리면서, 어젯밤에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옥상문 밖으로 먹이를 같다 놓았다면 이렇게 처참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떠나지를 안는다.

107. 고사리 나물을 볶으면서
2008.11.9
한국서 가끔 마른 산나물을 보내주시는 분이 있다. 산나물을 받을 적마다 자주 해서 먹어야지 하는데도 그렇게 안 된다. 마른 산나물을 해 먹게 되면, 손이 많이 가서 그런지 미루고 해 먹지를 못한다. 그런 연유로 그동안 보내주신 나물이 상자 가득히 들어있다. 정성스럽게 보내주신 산나물을 볼 적마다 미안한 마음이 그득하다.
이번에도 마음을 벼르고 바삭바삭 마른 고사리 나물을 꺼내서, 하루 전날 물에 담가 두었다. 오며가며 불려지는 나물을 들여다보니, 그 삐적 말랐던 줄기들이 물을 받아 먹고 피어오르는 것이 너무나 활기차다. 포동포동 피어오른 고사리와 줄기 위에 돌돌 말려 있는 것이 꽃처럼 보인다. 문득 산 속의 이름 모르는 풀들과 어우러져 한들거리는 느낌까지 든다.
대접 만한 양의 고사리를 불렸는데, 물을 먹고 한 소쿠리로 불어났다. 반년은 빳빳이 말라죽어 있었을 고사리가 생기 있이 되살아났는데, 다시 끓는 물 속에 집어넣는 다고 생각하니, 문득 애처로운 마음이 들어진다. 그래도 이렇게 해야만 하는 조리법이니, 다시 펄펄 끓는 물 속에 넣고 한참을 나 두었다. 끓는 물 속에 잠겨 있는 고사리를 한두 번 뒤척여 주었더니, 포동 했었던 줄기들이 물컹이 나 몰라라 퍼드러저 있다. 무른 고사리를 건져서 찬 물 속에 다시 한참을 나 두었다가, 물기가 떨어질 때까지 채반에 받쳐두니, 다시 고사리 줄기들이 생기 있이 피어난다.
길면 긴 채로 볶아서 먹었으면 좋으련만, 보기도 좋고 먹기에도 불편하지 않게, 다시 한줌씩 간추려서 자르려니 또 왼지 주춤해진다. 볶기 전의 과정이 이렇게도 손이 가고 애처로운 마음도 들었지만, 가진 양념을 해서 펜에서 어우러져 피어 나오는 고소한 맛이 온 집안에 스며 베이는 것이 좋다.
가만 생각하니, 나에게는 신혼이란 것도 없이 바쁘게 나도 모르게 지나 간 것 같다. 오랜만에 내 손으로 정성스럽게 지은 밥상을 차려서, 밖에서 일을 보고 들어 올 남편을 기다리는 지금의 이 마음이, 신혼의 젊은 부부들 마음일 것 같아진다.

106. 이목사님 가족
2008.10.27
대만서 살아 온 세월이 많은지, 서랍 몇 개에 여기저기서 온 카드가 가득 들어있다. 서랍을 열 적마다 정리를 해서, 새 공간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먹어도, 마지막으로 한번 더 읽어보면, 담긴 글들이 내 마음과 손을 옭가메는 것 같다. 그래서 읽던 카드들을 다시 차곡차곡 서랍 속에 쟁여 넣곤 한다.
오늘도 서랍을 열어 보니, 내가 기르던 강아지 생일날 보낸 카드인데, 강아지 일기장으로 쓰라고 색종이를 여러 장 겹쳐 만들어, 층층 케이크도 그려 넣은 것이 너무나 귀엽고 천진스러워, 나 혼자 한참을 웃고 있었다. 나를 그렇게 미소 짖게 만든 카드 속의 꼬마 아가씨는, 7년 전에 한국에서 대만으로 선교 일을 하시러 오신 이목사님 가족의 따님이다. 좋은 인연으로 내가 사는 아파트로 이사를 와서 살게 된 목사님 가족과, 내 집의 강아지를 보러 왔다갔다 들랑이던 두 꼬마 아가씨로 인해, 내 마음이 즐겁기도 했었다.
한번은 대만에 오신지 얼마 안 되어서 설날을 맞은 적이 있었다. 우리는 여느 때와 별 다름 없이 조용히 설을 지내기에, 목사님 가족을 집으로 오시게 해서 간단히 저녁을 먹자고 했었던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날 가족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나타나셨다. 그리곤 느닷없이 세배 절을 받으라고 하신다. 남편과 목사님의 연령이 차이가 많이 나서, 한국식으로 예를 차리시나 했지만, 나까지 절을 받으라고 하는 바람에, 송구스러운 마음이 일어 방문을 박차고 나왔던 생각이 난다. 그때 단아한 모양새의 한복을 차려 입으시고, 곱게 절을 하시는 목사님네 가족을 보면서, 왜 한국사람은 이렇게도 끈끈한 정들이 많은가 하는 생각을 하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울컥 쏟아 질 것 같은 마음을 억지로 참았던 생각이 난다.
그렇게 1년 간 가끔씩 만남을 가지면서 즐거워하며 지냈는데, 다시 한국으로 들어가야만 할 급박한 상황이 벌어졌다. 아쉽게 이별을 하고, 한국에 계신 줄로만 알았는데 다시 외국으로 선교 일을 하시러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떻게 지내시나 안부를 묻고 싶었지만, 타국에서 감시를 받으며 조심스럽게 선교를 하신다는 소식을 듣고는, 해를 끼치게 될까봐서 하고 싶었던 연락을 그만 둔 적이 있었다. 그래도 문뜩문뜩 이목사님네 가족을 잊지 않고 생각하고 지내왔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얼마 전에 한국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2년 간 대만에서 다시 머무르게 되었다고, 우리가 그 아파트에 그냥 살고 있는지 전화를 해 보았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 오셔서 살고 계신다. 7년 전에 유치원을 다녔던 목사님 둘째딸인 다혜가 중학생으로 변했고, 초등학교를 다녔던 큰딸인 주혜는 고등학생으로 몰라보게 변해 버렸다. 목사님 내외분은 타국에서 이런저런 고달픔이 많았을텐데도, 여전히 편안한 모습으로 좋아 보이신다. 전에는 아이들과 다혜 엄마가 중국말을 못했는데, 지금은 유창한 말솜씨로 남편과 대화를 하니깐, 식사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가졌다.
목사님 부부는 한동안 집안에 들여놓을 가구와 생활 용품들을 사러 중고 가게를 부지런히 돌아다니시면서, 안착된 생활이 되어 가고 있는 중이신 것 같다. 어느 분이 주셨는지, 너털거리는 16년 된 차를 몰고 다니시는 목사님이, 참으로 검소하고 소탈하신 분이라는 생각을 다시 가지게 된다. 말 한마디에도 유머가 철철 흘러 넘치시는 이목사님 가족이, 2년 간 머무르시게 될 대만 생활이, 좀더 잊혀지지 않는 뜻 깊은 곳이 되시기를 마음 속으로나마 기도 드린다.

105. 한 여름밤의 대화
2008.10.17
여름 내내 자주 갔던 찻집의 의자에 앉았다. 이번 여름에는 알고 지내는 여대생으로 인해, 기울어지는 밤이 시작되면, 부리나케 외출을 하는 게 나의 중요한 일이 되기도 했다. 그 여대생은 내년쯤 한국으로 단기 유학을 갈 계획으로, 온 전념을 다해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는 학생이다.
그러한 연유로 한국사람인 나와 자주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순조롭게 입이 띄어 지겠지, 하는 생각에서 연애를 하는 사람처럼 밤 외출이 잦았었다. 그 학생과 자주 만나다 보니, 만나는 시간대에 난대 없이 비가 뿌릴 적도 많았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약속된 시간을 다른 날로 미루어도 되건만, 서로 대단한 만남을 가진 양, 시간을 잘 맞추어 나타난다. 일주일에 2,3번 만나서 얘기를 하는데도, 정해 놓은 2시간이 왜 그렇게도 빨리 지나가는지, 서로 아쉬움을 남기면서 다음에 만날 날을 기대 하기도 한다.
나는 평소에 만나야 할 사람과 약속을 가지면서, 왜 그 일로 며칠 전부터 부담을 가져야 하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 학생과 아무런 부담 없이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한 여름밤의 대화가 문연득 떠오르는가 보다.
한달 전 개학을 해서 타이베이로 돌아 간 후, 메일이 왔다. 대만 국가에서도 치를 수 있는 한국어 능력 토픽인, 중급에 해당되는 3급 시험에 무사히 통과 할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을 알려 왔다. 아울러 자신이 이렇게 한국사람과 자연스럽게 얘기를 할 수 있게 된 것이, 이모의 도움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다고 어른스러운 말을 해 오기도 한다.
내가 평소에 그에게 해주는 일이라면, 가끔 주고받는 메일과 개인 블로그에 한국어로 쓴 일기형식의 귀여운 글들을, 바로 잡아 주는 것 이외에는 별 다른 도움이랄 것도 없었다. 교정해서 보낸 파일을 보내면, "정말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라는 겸손의 말을 적어 보내온다.
그동안 대만서 많은 세월을 살아 왔지만, 이렇게 한국문화를 사랑하고 한국언어에 흥미를 가지면서, 열심히 생활하는 학생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앞으로 그 여대생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힘 닫는 대까지 협조해 주고 싶은 마음이 오늘따라 많이 들어진다.

104. 행복한 마음
2008.9.29
마지막 남은 한 봉다리의 김치를 가위로 자르면서 미소가 흘러나온다. 내가 자주 다니는 대형마켓의 한 코너에서는 수입된 한국김치를 팔고 있다. 오래 전 일인데 두부를 집으려다가 한국글씨가 눈에 들어와 놀란 적이 있었다. 근데 그 '맑은 독 깊은 맛'이란 김치 때문에 그 코너를 외면하면서 다니기도 한다. 한국김치를 사 먹고는 싶은데, 작은 봉다리의 양이 너무 비싸서 은근슬쩍 얼굴을 돌리면서 지나친다. 그 돈으로 다른 물건을 더 사던가, 맛이 덜해도 삼분의 일 가격의 대만사람이 만든 한국김치를 사기도 한다.
근데 어느 날 그 '맑은 독 깊은 맛'의 김치가 내 마음을 알아 차렸는지, 김치 깍두기를 한 봉지에 넣어 놓고, 하나를 사면 하나를 더 준다고 쓰여져 있다. 기쁜 마음에 두툼하게 들어 있는 김치, 깍두기 봉지를 집어 쇼핑 카트에 넣고, 돌아서려는데 한 봉지만 더 사고 싶은 생각이 들어진다. 그런데 남편과 내가 물건 사는 방법이 틀리기에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섰다. 나는 평소에 싸게 나온 물건이 있으면, 나중에 더 사용하고 더 오래 먹으면 절약되는 것이란 생각에 이것저것 살 적이 많다. 그런데 나중에 버려지는 게 더 많은 것을 아는 남편은, 세일하는 것에 눈 밝히지 말라고 누누이 말을 한다.
다음날, 흰쌀밥에 김치 깍두기만 해서 밥을 먹는데, 왜 그렇게도 맛이 있는지 정말 맑은 독에서 김장김치를 막 꺼내 먹는 깊은 맛이 우러나온다. 우리의 깊은 전통 맛으로 무아지경에 이르렀는지,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너무 행복해, 나는 너무 행복한 사람이야"하면서 밥을 먹었다. 가끔 김치를 담아서 먹기도 하지만, 사각거리는 배추, 깍두기의 느낌이 없어서 담는 것을 아예 포기한다. 평소에 심심한 대만 음식도 내 입맛에 맞는지, 김치 맛을 잊으면서 사는 내가 신통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근데, 밥 한술에 김치 깍두기를 얹어 먹는 맛이 왜 이다지도 행복한 마음이 들며, 왜 이렇게도 내 속까지 후련하게 만들어 주는지,,,.
평소에 김치 맛을 잃어버리고 사는 나의 생각이 그르다는 것을 알았다. 그냥 어쩔 수 없이 포기하듯 잊은 것처럼, 대만 음식에 동화되듯 살았었구나 하는 생각이 앞선다. 이렇게 맛난 점심을 혼자 먹은 후에 포만감에 젖어 있는데, 밖에서 남편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 소리가 밝았는지, 왜 그러냐고 한다. 후덕한 김치, 깍두기로 인해 행복했었던 마음을 전했더니, 그냥 덤덤히 전화를 끊는다. 대만사람이 이 내 마음을 어찌 헤아릴까 싶어진다.
곧 돌아온다는 사람이 늦게 들어 와서는 대형마켓의 봉지를 내밀면서 특별한 선물이라고 한다. 하루 전날 갔었는데 거긴 왜 또 갔었나 싶어 봉지 안을 들여다보니, '맑은 독 깊은 맛'의 김치, 깍두기가 3봉지나 들어 있다. 생각지도 못한 것이 들어 있어서 그랬는지 그 날 내내 자잔한 감동이 일어진다.

103. 그악스런 태풍
2008.9.28
올 것이 왔는가 보다. 며칠 전부터 대만전역에 태풍이 불어닥친다고 하더니만,,,.
슈퍼마켓 안에서 밖을 내다보니, 그악스럽기 짝이 없는 태풍으로 가로수가 잘려 지나가던 스쿠터가 쓰러져 차들이 길길이 정차한다. 두려움이 일어진다.
2주전만 해도 태풍으로 인해서 국제 전시가 엉망이 되었던 생각이 난다. 전시 전날 비바람이 몹시 부는데도 전시에 참석하려고 온 손님을 마중하러 공황을 나갔다 와서는, 정부에서 처음으로 도맡아 하는 관계로, 착오가 없기 위해 작품 디스플레이를 도우러 전시장으로 급히 갔다. 늦은 밤까지 도움을 주고 와서는, 다음날 있을 다채로운 전시 오프닝이 잘치루어 지길 바랬다. 그런데 밤 12시에 뉴스를 보니, 정부의 모든 관공업소의 일정을 휴업으로 정한다고 공고를 내린다.
24개국이 참가한 198점의 작품을 멋들어지게 펼쳐 놓았는데, 전시장 문을 닫는다고 생각하니 맥이 빠진다. 멀리서 전시에 참석하려고 온 화가에게도 미안스럽고, 전시오프닝을 위해 준비했던 스케줄이 수포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그 많은 365일 중에 왜 하필이면 이날로 정했을까 하는 마음부터 든다. 태풍이 지난 일주일 후에나 다시 전시오프닝을 갖았지만, 김이 빠진 것 같은 아쉬운 마음은 어찌할 수 없는가 보다.
이번에도 태풍으로 며칠 간 꼼짝달싹 할 수 없을 것 같다. 냉장고 문을 열어 보니, 덩그러니 비어있다. 먹고 살아는겠기에 위험을 무릎 쓰고, 집 근처의 가까운 슈퍼로 가서 이것저것 바구니에 담았다. 계산을 하고 슈퍼 안에 옹기종기 마련된 둥근 의자에 앉자 밖을 내다보니, 집으로 갈 길이 까마득해진다. 포악스럽게 변해버린 비바람이 너무나 무정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기후의 변화는 어느 힘센 천하장사도 막을 수 없는 거겠지 싶어진다. 이렇게 닥쳐지는 데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생인가 싶어지는 날이다.

102. Tea time
2008.9.6
타이중 시장이 보낸 초대장을 받고 시간에 맞추어서 청핌 서점의 부설 커피 집으로 갔다. 시장과 인사를 나누고 자유스럽게 놓여진 자리를 택해 앉았다. 50여명쯤 되어 보이는 기업인들이 모인 자리에, 제공되는 달콤한 케이크와 커피, 티를 따라주는 조심스러운 손놀림이 분위기를 돋아준다. 시장이 마련한 이번 티타임은 바쁜 경영인들이 잠시나마 시간을 내서, 녹색의 대지를 바라보며 차와 함께 서로의 경영에 대한 경험을 교환해 나누자는 의미로 마련되었다고 한다.
티타임을 가지는 이 자리의 건물은 녹색의 환경을 위한 이념으로 건설되었고, 5만개의 화분을 모자이크처럼 외벽에 부쳐 처리하는 공사가 슬라이드를 통해 설명된다. 그래서 그런지 오픈한지 얼마 안 되는 이 곳을 지나치다 보면, 녹색의 대지를 밟고 지나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프와 바이올린의 선율이 멈추면, 경영인들의 이야기가 들린다. 지금 커피를 마시고 있는 서점 또한 3층 전면을 서점으로 만들어 책을 사지 않아도, 자유스럽게 앉아서도 서서도 책을 볼 수 있는 생활공간이 되어 줄 수 있는 방침으로, 전국에 서점이 들어서게 된 동기를 설명한다. 틈틈이 따라주는 와인을 마시면서, 돈을 벌어야 하는 경영인들의 발상이 신선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티타임에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내가 설자리가 아닌 것 같아 부자연스럽기도 했다. 그렇지만 하프의 가날픈 속삭임을 들으면서, 기업인들의 이념을 들었던 오후의 티타임 시간이, 또 다른 경험을 가져 본다는 생각을 하여 본다.

101. 고연정의 예술표현
2008.9.4
평소 집안에 걸려오는 대부분의 전화는 남편의 전화이다. 예전부터 말주변도 없고 중국어도 서툴러서 그랬는지 전화 받는 것을 꺼려했다. 그러다 보니 으레 남편이 집에 있는 날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근데 그 날, 전화 속의 생소한 남자가 나를 찾는다.
전화의 상대방은 대만사보의 문화부 기자라고 밝힌다. 대만서 창작 생활을 하는 나를 대만사보의 문화란에 보도했으면 해서 전화로 인터뷰를 하고, 자료를 신문사에 보내달라고 한다.
이런저런 물음에 답변을 하는데 등줄기에서 진땀이 흘러내린다. 흥분을 하고 긴장을 한 나에게 내심 당당해 지자고 했지만, 떨려오는 목소리는 감출 수가 없는가 보다. 가끔 전시가 있으면 신문에 보도되는 까닭으로 신문기자들도 만나기도 하지만, 갑자기 전화로 예술창작에 대한 얘기를 하자니, 그것도 나에게는 많은 부담을 안겨주는 요구였는가 보다. 전화를 끊고 한참 동안 맥이 풀린 채 앉아 있었다.
알려 준대로 보도된다는 날짜에 맞춰 세븐일레븐의 신문가판대서 대만사보의 문화란을 뒤척여 보았다. 나의 눈보다 더 큰 활자로 '고연정의 예술표현'이란 타이틀이 적혀있다. 신문의 삼분의 일을 차지한 지면에 나에 대한 글과 창작하는 사진, 작품사진을 보니 왼지 모르게 숙연스러워진다.
전국의 독자들이 볼 수 있는 반면에 소개해준 대만사보의 진기자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100. 국제전 작품
2008.8.31
요즈음 국제전에 출품할 작품을 만들면서 작년 9월초에 국제 채묵 전시를 치렀는데 벌써 1년이 지났구나 싶어진다.
이맘때이면 매년 어김없이 찾아오는 국제 그룹전 작품을 위해 고심을 해야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평소에 그림을 그리고 만들다가도 잠시 손을 놓고 있다보면, 보름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기도 한다. 이럴 때 맞이하는 전시회는 나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동기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가로 90센치와 세로180센치 전시규격의 흰 천을 펼쳐놓고 구상을 하게 만든다. 한동안 그러고 있다가는 무언가 영감을 얻은 듯 싶으면, 나의 몸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양은 대야 속에 먹물을 흥건히 쏟아 붓고, 흰 천을 먹물에 담가 놓는다. 그런 후에 바닥에 구겨서 깔아 놓은 신문지 위에, 먹물이 베인 천을 짜서 그 위에 펼쳐놓고 색을 발하게 한다. 먹물을 빨아 드리는 신문지 위의 천을 들여다보면서 옛 생각이 난다. 학창시절에 여주 이천의 도자기 공장에서 도자기를 가마에 집어넣고, 공예과 학생들과 고사를 지냈던 생각이 떠오르면서, 말라 가는 천을 들여다보며 마음속의 고사를 지낸다.
그렇게 나만이 가지는 의식을 치렀는데도 원하는 문양이 나오지를 안았다. 그 위에 구상을 했던 작업에 들어가도 되지만, 만족한 문양을 위해 번거로워도 다시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신문지를 듬성듬성 구겨서 높게 언덕을 만들어 놓기도 하고, 평지를 지나 다시 군데군데 작은 언덕을 도톰하게 만들어 바닥에 펼쳐 놓았다.
앞서 염색한 먹물이 너무 진한 듯 해서, 물을 타서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휘휘 저어 썩는다. 그 속에 또 다른 흰 천을 구겨 넣고, 빨래를 하듯 비비고 짜다가 먹물이 얼굴에 튀겨서 얼떨결에 손을 올리는 순간, 고무장갑의 먹물이 내 옷으로 흘러내린다. 이럴 때는 하던 작업을 내 팽개치고 울고 싶은 심정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땀으로 범벅이 된 몸에서 퍼져오는 묵향이 싫지가 않다.
바닥에 깔아놓은 구겨진 신문지가 지형의 모형처럼 보인다. 새로 염색된 천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펴놓고, 도자기를 구울 때의 심정으로 또 다시 마음속의 고사를 시작한다. 볼록히 쏟아 오른 산언덕에서 먹물을 빨아 드리는 신문지가 숨을 죽이면서 주저앉기 시작한다. 그러는 사이 천에서는 불규칙한 추상의 문양이 드러난다. 뽀송뽀송 마른 천을 햇볕이 있는 곳으로 들고 나가 비쳐 보니, 중단을 안하고 계속 시도를 잘 했다는 생각에 미소가 흘러나온다.
바탕부분이 완성되었으니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이번 전시의 주제가 인문에 관한 생태라서 많은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다. 그동안 틈틈이 제례를 지낼 때 쓰이는 금종이 위에 붙여 만든 작은 소품들 속에서, 꽃과 새들이 들어간 소재의 그림을 찾아, 염색된 천의 왼쪽에 부분에 나열해 얹어 놓았다. 올려놓고 보니, 어누룩한 밤에 산 속의 새들이 자연과 더불어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 참으로 한가로와 보인다. 오른편의 균형을 위해 빨강, 노랑, 초록색의 무명 천을 꺼내서 염색된 천 길이만큼 좁게 잘라 올려놓으니, 한국적인 색채로 꽃과 새들의 어우러짐이 좋아 보인다.
화면이 조화스럽다 보니, 생각을 가져야 할 공간이 없어졌다. 그 부족한 부분을 위해 또 다른 그림을 뒤척여 본다. 꼬불꼬불한 길속에서 새의 몸뚱이는 보이지 않고, 머리만 달랑 달린 새가 낮선 길목에서 처연히 무언가를 갈구하는 그림이 눈에 뛴다. 그 그림을 집어 색동으로 단장된 무명 천 밑에 올려놓았다. 길 잃고 상처로 얼룩진 새는 자유자적 하는 자연의 만물을 연민하면서 처량한 새의 내면 세계를 읽게 만든다. 이번 전시 주제가 인문에 관한 생태라서 그런지, 자신도 모르게 파괴되어 가는 자연환경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한다.
이렇게 구상해서 나열된 그림을 한없이 들여다보고 있다가, 돋보기 안경을 찾아 끼고 바늘에 실을 끼워, 그림 하나하나에 손 박음질을 한다. 그리곤 작품을 싸들고 옷을 고쳐주는 바느질 집으로 간다. 한사람이 들어가면 꽉 찰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서, 드문드문 손으로 떠서 가지고 간 것이 비뚤어 나갈까봐, 내 손도 도로록 거리는 재봉바늘을 따라다니며 아주머니의 손처럼 바빠진다. 1시간이 넘게 비좁은 공간에서 허리를 굽히고 손에 힘을 주고 재봉틀 바늘과 씨름을 했는지, 오금도 쑤시고 허리도 펼 수 없이 뻐근하다. 힘없이 돌아가는 작은 선풍기의 더운 바람 탓에 식은땀이 난다. 부리나케 집으로 가지고 온 작품을 다리미를 꺼내 다려서 서명을 하고 나니, 한 아기가 태어난 듯 깊게 숨을 몰아 마시고 지친 몸이 되어 마루 바닥에 쓰러져 누어버렸다.

99.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
2008.8.30
장이모 감독의 기획으로 베이징 올림픽 개막공연이 웅장하고 찬란하게 펼쳐진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어느새 16일 이란 시간이 지나 폐막식을 가졌다.
새둥지 모양을 한 메인 스타디움에서 2008년 8월8일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이 거행되었다. 중국의 5천년 역사를 한 눈에 읽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중국의 4대 발명품인 화약과 종이, 활자, 나침반을 등장시켜 화려하고 찬란했던 중국의 문명을 장엄하게 펼쳐 놓아주었다. 장이모 감독의 독특한 감성으로 과학과 예술을 결합시킨 개막공연을 보면서, 미학을 모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많은 감동을 받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번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과 폐막식을 기획했던 장이모 감독 또한 100점을 초월한 개막식이었다고 당당히 기자회견장에서 말을 한다. 그만큼 완벽함을 강조했던 것 같다.
이번 올림픽의 메시지는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이란 올림픽 정신의 화합과 평화를 의미하는 메시지라서 그런지, 올림픽 주제음악인 You & Me의 자잔한 노래가 메인 스타디움에 흘러 퍼지자, 그 많은 관중들을 하나로 만들어 주는 느낌을 받았다.
아울러 이국서 사는 나에게 한국을 위해 열전 했던 훌륭한 한국 선수들의 만족했던 성과에 자랑스러움을 금치 못하였다. 4년 후의 영국에서도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이란 아름다운 메시지처럼 올림픽 성화가 불붙기를 바란다.
새둥지의 메인 스타디움 밖에서 무수히 쏟아 품어 올라오는 불꽃이, 암울한 전쟁의 시대를 떨쳐버리고 평화의 불꽃으로 승화되는 축제로 보여진다.

98. 수술 대기실
2008.8.4
남편의 수술이 오후 시간에 있을 줄 알았는데, 이른 새벽에 간호원이 잠을 깨운다. 아침 7시에 첫 수술에 들어가니 서두르라고 한다. 부랴부랴 세수를 하고 이것저것 챙기고 있는데, 힘이 좋아 보이는 남자가 들어오더니 남편에게 파란 가운을 입혀 휠체어에 태운다. 5층 수술실로 재빠르게 굴러가는 휠체어 바퀴를 보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수술 대기실 앞에 도착해서 침대로 옮긴 남편에게 비닐모자를 씌운다. 수술실로 들어가는 남편에게 무슨 말이라도 한마디해야 하는데, 숨돌릴 사이 없이 생긴 일이라 내 손이 그의 얼굴에 스쳤다가 내려 갈 뿐이다. 그리곤 수술실 문이 스르르 닫힌다. 나의 마음도 '쿵.'하고 닫히는 것만 같다.
마음을 진정 시키고 탁자 위에 있는 신문을 들여다보니 아무것도 안 들어온다. 1시간이면 끝난다는 수술이 2시간이 되어간다. 시간이 지나 갈수록 입안의 침도 마르고 애 간장도 타는 것 같다. 안절부절 못 하는 통에 의자에 앉아 있을 수가 없다. 그 사이 환자들이 속속들이 수술실로 들어간다. 대기실 앞에서 침울해 보이는 가족들이 점점 불어난다.
방송으로 환자의 보호자를 수술 대기실 안으로 불러들인다. 수술도중 문제가 생겨서 가족들과 의논을 하는 것 같다. 들어갔던 보호자들이 창백한 얼굴이 되어 울고 나오기도 한다. 그러한 가족들의 얼굴을 대하니 덩달아 걱정이 앞선다. 간간이 다른 환자들의 가족을 불러들일 적마다 내 심장도 내려앉고 내 다리도 후들거린다.
3시간이 다 되도록 아무 소식이 없으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수술 대기실 창구 앞의 간호사에게 물어봐 달라고 간청을 하니, 수술을 하는 도중이라고만 한다. 불길한 생각만 앞서니 어찌 할 바를 모르겠다. 한참을 복잡한 마음에 사로 잡혀 있던 중, 문이 열리면서 침대 위에 누워있는 남편과 순간적으로 눈이 마주치자 손을 들어 올린다. 남편의 손을 움켜진 나의 마음이 고마움에 젖어 눈물이 되어 흘러내린다.

97. 그 선물 봉투
2008.7.23
차안에 가방을 놓으려는데 가지고 갔던 선물 봉투가 내 손에 들려져 있다. "어머나 이렇게 정신이 없으니."...
한국어에 심취해 있는 대만 여대생이 여름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 왔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만나지를 못하고 있다가 약속을 했다. 만나는 날 무언가 주고 싶어서 미술관 20주년 기념으로 받은 시계가 나에게 너무 젊어 보이기에, 그 학생에게 주려고 했던 시계와 아시는 분이 보내 온 녹차 김을 봉투에 담아 약속 장소로 갔다. 선물이 마음에 드는지 시계를 손목에 걸어도 보고, 김은 밥에 싸서 먹겠다고 좋아라 한다.
저번 학기보다 더 유창해진 한국어로 학교 생활의 이모저모와 내년에 한국으로 단기유학을 갈 계획이며, 음악과 그림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그 여대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노라면, 같은 연령의 친구가 된 양 젊음에 싱그러워지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차가 빨강 신호등 앞에서 기다리는데, 준비해 갔던 선물 봉투와 눈이 마주친다. 나야 요즘 정신을 빼 놓고 다닌다고 치지만, 그 예쁜 아가씨는 어째 나처럼 잊었을까 싶은 게 웃음이 나온다.
다시 집으로 들고 들어온 선물 봉투를 본 남편이 "두 사람은 그림도 그리고 음악도 하기에 지극히 정상적인 예술가야."하면서 미소를 짖는다. 그의 말에 얼굴이 후끈 달아오른다.

96. 우울한 마음
2008.7.20
날짜에 맞추어서 큰 병원으로 갔다. 접수를 하고 검진하는 곳으로 가서 차례를 훑어보니 106번으로 멘 끝에 적혀있다.
일주일 전에 남편의 복부에 무언가 볼록한 것이 튀어 나와서 동네 병원을 찾았는데, 큰 병원으로 가라고 날짜와 지정의사를 알려준다. 이렇게 환자들이 많은 줄 알았으면, 예약을 해두는 것인데 하는 후회가 앞선다. 100명이나 넘는 환자를 다 검진하려면 저녁이나 되겠다 싶어서 병원과 그리 멀지 않은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저녁 늦게 병원을 다시 찾았다. 의사가 꼼꼼히 검진을 보아서 그런지 환자 수가 줄어든 것 같지 않았다. 이렇게 무작정 기다리려면 밤 11시쯤에서야 검진을 받을 것 같았다. 동네 병원은 밤 10시까지 진료를 하기 때문에 갑자기 아플 때 이로운 점도 많았지만, 이렇게 큰 병원에서도 야밤까지 환자를 검진한다는 것은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병원을 찾고 나서야 주위에 아픈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었구나 싶어진다.
다시 집으로 가서 기다리는 것도 번거로워서, 병원의 찻집을 찾았다. 기다리려니 왼지 모르게 힘이 든다. 평소에 찻집에 앉아 있는 것 하고는 틀리게, 몸에 이상이 있어서 검진을 기다리며 찻집에 앉아 있는 다고 생각하니 지루하기 그지없다.
11시가 다 되어서야 마지막 번호 판에 불이 켜지자, 긴장을 하고 의사 앞에 앉게 되었다. 복부의 막이 엷어져서 생긴 병이라고 수술을 해야만 한다고 한다. 입원날짜와 수술날짜를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 왔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병을 가지고 있고 위험한 수술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남편이 치근해 보인다. 다음주에 있을 수술을 기다리는 요즘의 마음이 초조하고 우울하기만 하다.

95. 온화한 선물
2008.7.8
밤 12시경에 메일을 체크해 보니, 알고 지내는 여대생한테서 메일이 와 있다. 타이베이에서 친구한테 선물 받았던 과자가 너무 맛이 있어서, 여름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오면서 연정이모에게 선물로 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과자를 사 와서 아파트 관리실에 갔다 놓았다고 적혀있다.
과자를 가지러 내려가 보니, 너무나 앙증스럽기 짝이 없는 작은 봉다리에 4종류의 과자가 담겨져 있다. 과자 맛을 보아야 하는데 너무 늦은 시각이라 단 과자를 먹으면 살이 찌겠다 싶었지만, 정성을 생각해서 커피 맛, 코코아 맛, 검은깨 맛, 밀크 맛의 얄팍한 과자를 한 조각씩 입안에 넣고 맛을 보았다. 사르르 녹아지는 맛이 남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맛있는 나머지 살이 찌면 어쩌나 걱정했던 생각을 접고, 다시 과자를 집어먹으려다가 예쁜 마음이 가미된 과자를 다 먹어치우는 것에 아쉬운 마음이 들어졌다. 한가지씩 맛을 보고 남은 과자를 접시에 담아 랩을 씌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예쁜 마음이 들어간 과자라서 그런지, 자꾸 책상 위의 과자에 눈길이 간다. 그리곤 나도 모르게 온화한 웃음이 흘러져 나온다.

94. 냉동된 물고기
2008.7.5
오랜만에 냉장고의 냉동실 문을 열고 반찬 할 것을 뒤척여 보았다. 한달 전에 사 놓은 생선이 한 귀퉁이에서 멀뚱히 눈을 뜨고 "너무 추워요. 꽁꽁 얼린 내 몸을 좀 녹여 주세요." 하는 것 같다.
요즘 날씨가 37도가 웃도는 터라 음식 한가지만 조리해도 집안이 불구덩이가 되는 것처럼 변한다. 그러다 보니, 음식 만들 때마다 짜증이 나서 되도록 이면 밖에서 먹고 들어오는 날이 많다. 가끔 장을 봐 온 생선을 냉동실에 넣어 두고 잊어버릴 적이 잇곤 한다. 이번에도 오래 묵혔다가 버리게 되는 죄스러움을 없애기 위해서 냉동실 문을 열어 보았다. 그랬더니 생선 한 마리가 애절한 부탁을 하는 것 같아서 해동을 시켜 먹음직스럽게 조리를 해서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가끔, 펄떡거렸던 생선이나 동물들이 사람들의 희생물이 되어 몸 속으로 들어갈 때마다 나도 채식주의자가 되었으면 할 적이 잇곤 한다. 그러나 그것도 선량해 보이려는 마음뿐인지, 오늘도 식탁 위에 올려져 잇는 생선을 앙상한 가시만 남겨 놓고 잘도 발려 먹었다. 돌덩이 같이 얼은 물고기를 꺼내 잘 해먹었지만, 내 몸 속으로 들어가 영양을 보충한다는 이유를 그 물고기는 어떻게 받아 드릴지 모르겠다.

93. 내 강아지 의사
2008.6.30
매년 6월이면 기르는 강아지에게 예방 주사를 맞혀야 하는 달이다. 이 달이 가기 전에 예방 주사를 맞혀야지 하면서 가축병원을 찾았다. 평소에 활짝 열려져 있던 문이 오늘따라 굳게 잠겨있다. 무슨 볼 일이 있으면 문 앞에 사유라도 적어 놓을텐데 하면서, 옆 상점의 한약방 할아버지께 여쭤보았다. 그랬더니 "그 의사는 3개월 전에 교통사고로 죽었어"하신다. 무심코 물어보았던 일이라 그런지 너무 놀라 믿어지지가 않는다.
오랜 기간 내 강아지의 작고 큰 병치레를 정성스럽게 잘 돌봐 주시고, 작년에 예방주사를 맞혀주시면서 "니 나이가 사람으로 치자면 80이 넘는구나, 앞으로 100살은 살아야지"하시면서 강아지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는데...하는 생각을 하니 눈시울이 붉어지고 맥이 빠져 힘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대학의 선배 시고, 오랜 기간 친절히 강아지를 돌봐주신 활기 왕성하신 분이, 하루아침에 되돌릴 수 없는 일을 당하신 게 좀체 믿어지지가 않을 뿐이다. 살아가면서 인생에 큰 변화도 있어야 하지만, 이렇게 비애 적인 변화는 없었으면 하는 게 모든 사람들의 마음일 것이다.

92. 칵테일의 향기
2008.6.29
밤 12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각에 남편을 졸라 커피 집으로 가자고 했다. 자주 다녔던 커피 집이 밤늦은 시간에는 라이브 공연과 더불어 '라운지 바'로 바뀐다고 한다. 그래서 한번 들려보라고 했던 생각이 났다. 붉고 검은색을 뛴 실내 분위기가 벤드소리가 울려 퍼지자, 평소 가지고 있던 신비스러움이 깨지는 것이 아닌가 하면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메뉴를 읽어보니 장난기 어린 칵테일 종류의 이름에 웃음이 나온다. 눈에 익은 '모래사장의 사랑'이라는 칵테일을 시켰다. 그리곤 흘러간 팝과 재즈음악을 듣다보니, 어느새 칵테일 한잔이 다 비어있다. 여자들은 칵테일을 생소한 남자랑 홀짝홀짝 들이키면, 자신도 모르게 취해진다는 단점에 미소 짖고 있는데, 한잔 더 하지 않겠냐고 남편이 물어와 준다. 이번에도 쉽게 알아 볼 수 있는 '블루 하와이'란 칵테일을 한잔 더 시켰다. 젊은이들의 훌륭한 감각인지, 유리잔 속에는 주먹만하게 얼린 얼음이 푸른 쪽빛 칵테일에 잠겨 있다. 차가운 유리잔을 바라보고 있으니, 빙산이 녹으면서 푸른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느낌이 들어진다.
어두운 조명 밑에서 흘러간 서양 유행가를 들으며 마신 칵테일인지, 아른거려오는 느낌이 좋다. 평소의 생활과 동떨어진 시간이지만, 커피나 차를 마시면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는 또 다른 기쁨이 되어 주는 것 같다.

91. 잊을 수 없는 이집트
이집트에 다녀 온지 석달째 되어 가는데, 아직도 여행을 하고 다니는 기분이 가셔지지가 않는다.

이집트에 도착해서 첫 여행코스로 카이로의 박물관을 갔었다. 설레면서 들어갔던 박물관 안의 보물들이 창고 속에 아무렇게나 배치되어 있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지면서 영국의 대형 박물관서 빛나게 보존되어 있는 이집트 관의 유물들과 미이라 생각이 나기도 했었다. 그러나 여행을 하고 나중에 가졌던 생각이지만, 어디를 가나 박물관에 있는 귀한 보물들이 땅바닥에 수두룩 널브러져 있기에, 창고 속 같은 박물관을 애써 이해하려고 했다.

그리고 며칠 간 유람선을 타고 나일강의 물줄기를 따라 여행을 했었다. 이집트 남쪽의 나일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집트 왕조의 보물이라고 불리 우는 룩소르가 있다. 그 곳에 있는 신전들은 너무나 거대한 스케일이기에 볼 적마다 놀라웠던 것 같다. 기둥과 벽면에 가득 메우고 있는 부조와 문자들은 어느 것이 그림이고, 어느 것이 문자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정말 룩소르는 나일강뿐만 아니라, 이집트 왕조의 보물로 불리울만 하다. 그래서 사막으로 이루어진 이집트에 나일강이 없었다면, 이집트 왕조와 이집트 문명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 한다. 그래서 나일강을 이집트의 선물이라고도 하는 것 같다.

이집트는 홍해와 지중해를 동쪽과 북쪽에 접하고 있다고 한다. 홍해의 잔잔한 물 결 위에서 에메랄드의 초록빛과 사파이어의 푸른빛이 너울거리며 빛을 발한다. 여행객을 태운 잠수함이 홍해의 바다 한가운데에 돛을 내렸다. 바다 속 주변이 온통 산호초와 수백 종류의 물고기들이 평화롭게 노니는 모습을 보면서, 물 속도 이렇게 멋진 세상이 있었구나 싶었다. 잠수함 안에서 본 바다의 세상이지만, 황홀감에 많이도 도취돼 있었던 것 같다.

이집트는 유적지와 사막 그리고 바다가 있는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광대한 사막은 홍해에 접해 있다고 한다. 아라빅으로 사막을 사하라라고 한다. 나뉘어진 여행객을 지프차에 싣고 사하라 사막으로 질주를 해서 달린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곡예를 하고 달리는 것도 여행 스케줄의 하나라고는 하지만, 끝없이 보이는 사막에서 차가 뒤집히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저렇게 질주를 하나 걱정이 앞섰다. 몸을 가눌 수도 없게 윽살리는 통에, 내려서 걸어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젊은이들은 그러함도 스릴이라고 생각하는지, 머리가 차에 부딪히고 몸이 의자에서 떴다 내렷다해도 의미 심상한 미소들만 띄운다.

말만 듣던 사하라 사막에 도착해서 기념사진들을 찍고는 그 고운 모래에 몸들을 비벼댄다. 사하라 사막에 가기 전에 가이드가 기념으로 모래들을 담아 올 봉지를 준비해 가라고 해서, 화장품을 담았던 작은 비닐 봉지를 하나 준비해 갔는데, 같이 간 여행 팀은 삽으로 떠서 담을 만한 비닐 포대에 사막의 모래를 마구 퍼서 담는다. 저 무거운 것을 어떻게 가지고 가려나 싶었지만, 가루약처럼 보드라운 모래라 그런지 한 포대를 짊어지고 가도 무겁지 않게 느껴졌던 것 같다. 모래 바람으로 형성된 기하학적인 사하라 사막의 고운 모래 산등성 위에서, 등을 대고 한숨 잤으면 하는 생각이 일기도 했었다.

사막에서 퍼온 모래들을 지프차에 싣고, 부근의 이집트 원주민이 사는 곳으로 가서 낙타도 타고 원주민이 만든 바비큐를 먹는다고 한다. 낙타는 모래 바람 속을 걸으면서 십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고 한다. 그리고 오백 킬로의 몸무게에다 오백 킬로 가량의 짐을 싣고 모래등성이를 오간다고 한다. 처음 낙타 등에 오르자 코끼리가 듬성듬성 걸어가는 느낌이 들어 진다. 그리곤 불쌍한 낙타의 인생을 생각하니, 낙타 등에 오른 것이 너무나 후해 막심했다. 온순한 낙타는 여행객들을 태우고 모래언덕을 한바퀴씩 돌아주고, 도착지에 돌아 와서는 겸허히 무릎을 끓고 주저앉는다. 낙타 등에서 내려와 물기 어린 낙타의 큰 눈망울과 마주치면서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여행단 스케줄에 맞추어서 타야할 것, 보아야 할 것들을 보면서 지냈지만, 홍해로 다시 돌아가는 지프차 안에서 온순하고 겸허한 낙타의 물기어린 눈망울을 생각하니, 마음이 우울해 지기 시작했다.

이집트를 떠나 대만으로 오던 날은, 홍해에서 다시 카이로로 거슬러 올라와야 했기 때문에, 잠을 설치면서 새벽 비행기를 타고 카이로로 돌아왔다. 이른 아침부터 올드 카이로 쪽에 위치한 "무하마드 알리 모스크" 사원으로 직행했다. 무하마드 알리는 이집트 19세기의 왕이라고 불린다. 신발을 벗어 들고 사원 경내에 들어가니, 여기저기서 무슬람들이 모여 경건히 기도들을 올린다. 화려하고 웅장한 규모의 사원이라 그런지, 나도 모르게 숙연해지기도 했다.

사원을 내려와 골목골목을 거쳐 지나오니,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가 있었다. 장엄한 무하마드 알리 모스크 사원과 너무나 대조적으로 초라한 교회이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니, 그 교회 지하에서 예수가 잠시 도피해서 피신을 하였던 교회라고 한다. 피신했던 지하 방이 너무나 썰렁하고 외소 하기 그지없다. 그러한 생각을 하던 중, 한국말로 연신 하느님 아버지를 되뇌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옆의 관광단은 공교롭게도 한국 여행단인데, 어느 교회의 순례 여행이라고 한다. 예수님이 도피해 있었던 곳이란 설명을 듣자, 하느님 아버지를 부르는 것 같다. 여행의 마지막 코스로 "칸카릴리" 란 시장에서 공포의 맛을 톡톡히 보고 모든 이집트의 여행을 무사히 마치었다.

여행자의 숫자만큼 경찰들이 이집트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던 광경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예전에 룩소르에서 폭파사건으로 많은 여행자들이 사망을 하고 부터는 공공장소의 어디를 들어가든, 소지품들을 다 꺼내 놓고 기계장치가 된 곳에서 몸을 검사해야만 통과되는 번거로움이 따르기도 했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치안은 안전한 편이었다.

집에 돌아와 보니, 그악스럽기 짝이 없는 이집트 상인들 때문에 제대로 된 기념품을 하나도 사 오지를 못했다. 그러나 내 집 거실에 이집트 아이가 퉁겼던 악기가 걸려있고, 탁자 위에 사하라 사막에서 한줌 가져 온 고운 모래를 접시에 담아 펼쳐놓고, 홍해의 바닷가에서 주워 온 돌을 모래 위에 얹혀 놓았다. 그것들을 오며가며 매일이다 십이 들여다본다. 그 멀고먼 이집트에 또 다시 가 볼 기회가 없을 것 같지만, 열정적이고 신비스러운 이집트란 나라의 모든 것들이, 내 기억 속에서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2007.4.14 글}

90. 공포의 시장
이집트 여행의 마지막 코스로 카이로에 있는 시장에서 기념품을 사는 시간이 주어졌다. 패키지여행을 하게 되면, 여행 틈틈이 물건을 파는 곳으로 데려가서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못마땅했었다. 그러나 이번 이집트 여행은 물건 파는 곳을 소개 안 하기로 한 관광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그런지 여행단 전원이 마지막 남은 2시간으로 친지나 친구들에게 주고 싶은 기념품을 사야하는 기다림이 있었을 것 같다.

넓은 광장 옆으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칸카릴리" 란 시장은 이집트에서 가장 큰 시장으로 알려졌고, 역사도 가장 오래된 시장이라 한다. 이집트를 여행하는 관광객들이 꼭 거쳐가는 곳이라 그런지 현지인들 보다 외국인들이 일색이다. 좁다란 상점 안으로 들어서자 손님을 끄는 활기에 찬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남대문 시장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이집트는 기계가 없어서 그런지 손으로 만든 수공예품들이 발달되었다고 한다. 특히 유리제품으로 만든 향수병이 유명하다고 들었다. 상점마다 지천으로 널 부러져 있는 향수병이지만, 보면 볼수록 참으로 아름답게 만들어 졌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든다. 좀도 섬세하고 예쁜 향수병을 사러 양편으로 옹기종기 붙어있는 상점의 좁은 거리를 걷고 있는데, 상인들이 점포 밖으로 나와서 자기네 가게로 들어와 물건을 사라고 길을 막고 야단법석을 떨어댄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이집트에 대한 상식을 알려고 책을 보니, 이집트 인구의 6명중 하나 꼴로 관광객의 수입으로 생활을 유지하고, 상인들이 부르는 물건값의 80퍼센트를 깎아야 적당한 가격으로 보면 된다고 적혀있었다. 그리고 여행객들에게 바가지를 씌우려는 곳이 이집트라고 적혀 있었지만, 정말 그런가 의아스럽기도 했었다.

가는 골목마다 기념품을 한 아름씩 들고 나와 가격을 외치면서 길을 막는 상인들을 제치고, 예쁘고 앙증스러운 유리제품이 가득 채운 상점으로 들어갔다. 호리병 모양을 한 향수병을 몇 개를 고르고 나서, 노란빛 유리의 고풍스런 포도주 잔을 골라 가격을 물어보았다. 바가지를 씌우려 작정을 했는지 내가 생각했던 가격의 열 배를 부른다. 모든 상점들이 다들 그렇다고는 하지만 애당초부터 그렇게 많이 부른 가격을 깍으려면, 밥 먹던 힘까지 다 불살라야 할 것 같았다. 책에서 읽은 대로 흥정을 하자니 힘이 빠지고 진이 다 빠져 버렸다.

굳이 바가지를 쓰고 싶지 않아서 깍던 물건을 안 산다고 하니깐, 슬그머니 뒷발로 문을 닫고는 험한 인상으로 돌변한다. 그리곤 포도주 잔과 향수병을 마구 창문에 두들이면서, 깨지지 않는 것을 강조한다. 너무나 살벌한 상황이었지만, 깨어지는 싸구려 유리잔을 다시 꺼내 보여 주겠다는 순간에 문을 박차고 나와서, 다른 골목으로 들어가 숨을 몰아쉬었다.

살벌한 상술에 위축되어서, 선물이고 기념품이고 사고 싶은 생각이 다 떨어져 나갔다. 그렇지만 언제 이집트에 다시 오겠는가 싶어서 물건을 사라고 난리를 부리는 또 다른 상점으로 들어갔다. 이 상점 주인도 조금 전에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청년의 얼굴과 비슷해서 은근히 걱정이 되었는데, 역시나 비슷한 협박으로 사람을 위축시킨다. 집합할 시간도 급박해 오고, 물건을 사면서 흥정을 한다는 게 너무나 두렵고 무섭기까지 했다. 가진 혼이 다 빠져가면서 향수병 몇 개를 사긴 샀지만, 이제는 거스름돈을 일부러 내주지 않고 다른 유리제품을 꺼내 보이면서 가진 진을 또 빼기 시작한다. 거스름돈을 받아야 했으므로 화를 참고 웃음을 토해내면서 나머지 돈을 받아 내었지만, 그들의 의도는 여행객들의 주머니 돈을 알알이 다 털어 내자는 심보였다.

관광 수입으로 많은 인구가 의존해 산다고는 하지만, 상인들이 관광객에게 씌우려는 바가지는 어느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사고 싶었던 포도주 잔을 못 사서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그들과 또 다른 투쟁과 공포의 맛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일찌감치 포기를 잘했다 싶었다. 찰거머리 같은 이집트 상인들에게 지쳐서 “칸카릴리” 란 시장을 빠져나와 보니, 조막 만한 향수병 몇 개만 손에 들려져 있었다.

2시간 전 만해도 여행단 전원이 큼지막한 쇼핑백 하나씩을 들고 기념품을 한가득 담아 올 줄 알았는데, 헐렁헐렁한 쇼핑백을 들고는 혼이 다 빠진 모습으로 하나하나 나타나기 시작한다. 내가 당했던 것처럼 상인들이 문을 걸어 닫으면서 향수병을 창문에 부닥치다 실수로 깨어지는 웃지 못 할 일들이 벌어졌다고 한다. 두려움 속에서도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고들 하지만, 나는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공포감을 느끼면서 물건을 샀던 경험이었다.
{2007.3.27 글}

89. 홍해로 가는 길
룩소르에서 거대한 신전들을 둘러보면서 놀라게 했던 마음을 진정시키고, 홍해로 향하는 날이다. 나일강의 물줄기를 타고 수십 척의 페리에 의존했던 여행객들이 룩소르의 여행을 마치고 또 다른 목적지를 향해 여행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집트의 가장 큰 수익이 관광산업이고 치안도 안 좋기 때문인지, 어디를 가나 여행객을 보호하는 경찰들이 수두룩 깔려있다. 처음 이집트에 도착해서 따발총 같은 것을 메고 다니는 경찰들의 모습에 두려움마저 일었다. 그러나 그것도 시간이 지나다 보니, 이집트란 나라와 어슬렁거리고 다니는 경찰들의 모습이 잘 어울러진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홍해로 떠나는 그 날은 여느 때와 다르게 관광버스들이 총집합을 하여 경찰차의 에스코트를 받으면서 출발을 한다고 한다. 외진 사막을 4시간을 넘게 가려면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외국인의 신변을 보호한다고는 하지만, 관광객으로서는 이해하기가 힘들었고 웃음이 나오기까지 했다.

관광버스 안에서 3일간 나일강의 물줄기를 타고 보았던 이집트의 거대한 신전들이 눈에 어른거린다. 이집트는 어디를 가나 보물들이 아무렇게나 뒹굴러져 있기도 하구, 삐딱히 세워진 채로 관광객들을 반기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러한 보물들을 보고 지나면서, 가장 가슴 벅찬 감동에 물들이게도 했던 곳이 룩소르인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룩소르는 이집트 왕조의 보물이라고 불리고, 이집트 박물관의 대부분의 유물도 이곳서 발굴되었다고 한다.

두시간 정도 사막을 달린 것 같은데도, 차창 밖의 풍경은 똑같다. 황량한 사막과 모래바람으로 이루어진 언덕, 군데군데 풀 포기가 보이는 것이 전부이다. 이집트는 1년 내내 비가 오는 날이 없다고 한다. 대만은 장마철이 되면, 앞이 안보일 정도로 소낙비가 막무가내로 뿌릴 적이 많다. 그런 비라도 한 춤 뿌려서 메마른 사막을 적셔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문역득 난다. 건너편에서도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은 관광버스의 대 행렬이 이루며 지나간다. 대충 지나가는 버스를 세워보니 60대가 넘어 보인다. 한참을 달린 관광버스가 화장실에 갈 사람들을 배려해서 작은 휴게소에 멈추었다.

홍해로 가는 사막의 중간지점에 휴게소가 한군데 있다고 한 곳이 이곳인 것 같다. 다리가 뻐근해서 버스에서 내려보니, 울긋불긋한 옷감으로 몸을 감아 두른 아낙들이 팔에 어린아이를 안고 장식을 주렁주렁 달은 낙타 옆에서 웃고 있는다. 조금 큰 아이들은 당나귀 옆에서 새끼 양을 안고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관광객을 쳐다본다. 그들의 이슬 같은 눈이 낙타의 눈망울처럼 보인다. 이집트에도 원주민이 있는지, 아낙네와 아이들이 하루에 2번씩 사막을 오가는 관광버스의 여행객을 맞으려고, 사막의 먼 거리를 낙타와 당나귀를 타고 휴게소에 온다고 한다. 그리곤 관광객들과 사진을 찍고, 그 돈을 받은 것으로 생활을 한다고 한다. 나 또한 어린양을 받아 안고, 수줍어하는 아이들과 당나귀 앞에서 활짝 웃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또 다시 황량한 사막이 펼쳐진다. 차창 밖의 사막을 바라보고 가는 마음은 편안한데, 조금 전 사진을 같이 찍었던 까맙잡잡 한 피부의 이집트 아이들 모습이 떠나지 않는다. 그 나이의 아이들이라면 학교 운동장에서 천진하게 뛰어 놀고 배워야 할 어린 나이란 생각이 들어서 일거다. 초점을 잃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홍해에 도착했다고 한다. 물 한 모금조차 구하기 힘들 것 같은 사막만 바라보고 오다가, 홍해의 쪽빛처럼 푸른 바다와 화려한 호텔과 빌라들이 보이니, 또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았다. 호텔 방을 배정 받는 틈을 타서, 모세의 홍해의 기적을 떠올리면서 푸르게 넘실거리는 홍해로 걸어 나갔다. 그리곤 홍해가 두 갈래로 갈라지는 연상을 하면서 넘실거리는 바다 물결처럼 나의 마음도 물결이 친다.
{2007.3.17 글}

88. 이집트 아이들의 눈망울
물건을 사 달라고 '원 달러' ‘원 달러’ 외치는 아이들의 구호는, 이집트 여행을 하는 내내, 내 귓전에서 맴돌았던 숫자이다. 아이들의 팔과 손에 가득 들고 외치는 물건의 값이, 모두 1 달러는 아니지만, 여행객을 끌기 위해서 원 달러를 외치면서 호객을 한다. 그리고 관광지에서는 이집트 돈보다 달러를 더 선호해선지 물건값을 달러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집트 어린이들도 어른 못지 않은 상술로 물건을 잘 판다. 관광지에 들어서자마자 여행객들의 길을 막고, 물건을 팔아 달라고 끈덕지게 딸아 붙으면서 원 달러를 외쳐댄다. 귀찮아서 안 산다고 빠른 발걸음을 하면서도, 아이들의 성화에 발걸음이 멈춰지게 된다. 이집트 아이들의 얼굴은 알맞은 검은 피부에, 갸름한 얼굴 속의 큰 눈망울이 조화가 잘 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그들의 큰 눈망울을 보고 있노라면, 애수에 찬 듯한 고혹하고 검은 눈빛이 참으로 매혹적이어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그들의 눈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천진하고 맑은 눈빛에 끌려서 거절했던 물건도 사게 만드는 마음을 일으킨다. 이집트 문향이 들어간 스카프를 사 달라고 조르던 아이의 스카프를 사서 목에 두르고 스핑크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집트 여행 6일째 되는 날, 남쪽지방의 룩소르에 있는 신전들은 돌아보게 되었다. 기둥 하나에 몇 사람이 부둥켜안아야 감쌀 수 있는 둘레의 석주들을 보고 있노라니, 너무나 벅찬 감동에 주눅이 드는 것 같았다. 그러한 느낌을 받으면서 입구를 나오는데, 어린 남자아이가 이집트 전통 악기 같은 것을 들고 열심히 줄을 퉁긴다. 조금전만해도 하늘을 찌를 것 같이 거대한 스케일의 뻗어 있는 석주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는데, 그 아이가 퉁기는 이름 모를 음률에 사로잡혀 유심히 아이의 연주를 지켜보았다.

5살 정도의 짧은 스포츠머리를 한 사내아이가 곧은 자세를 하고, 코를 질금질금 흘려 가면서 악기에 힘을 주고 줄을 당긴다. 해금모양을 한 작은 악기는 두개의 줄이 연결되어 있고, 이집트 상형문자의 그림도 붙어 있었다. 줄을 매단 둥근 부분에는 뱀 피 같은 것이 부쳐 있어서 그런지 그럴듯한 모양새의 악기 같았다. 활 모양을 한 것으로, 두개의 줄을 교차시켜 음을 내는 것인데, 거기서 퍼지는 음이 그럴 듯 하게 울려 전해져 온다. 부동자세를 하고 악기를 당기는 까마잡잡한 꼬마의 얼굴에서 웃고 있는 맑고 고운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이 난다. 어찌나 예쁜지 안아 주고 싶은 감정을 억제하고 사진을 같이 찍었다. 그냥 가는 것이 섭섭해서 사탕을 사먹으라고 돈을 손에 쥐어 주니깐, 힘주어 키던 악기를 가지라고 준다. 생각지도 않은 일이 벌어져서 거절을 했지만, 막무가내로 주는 악기를 가방에 넣어 야만 했다. 이집트를 떠나 온 지금, 거실에 걸어 놓은 그 악기를 보면서 이집트 아이의 빤짝거리면서 말을 하는 듯한 큰 눈망울이 떠올려 진다.

이집트의 아이들은 여행객들에게 많은 호기심을 가진다. 지나가는 관광버스만 보아도 손을 흔들어 주고, 눈이 마주치면 활짝 웃으면서 수줍어하기도 한다. 여행 내내 아이들의 천진한 눈빛에 빠지기도 했지만, 이집트 어른들의 눈빛은 아무런 미래와 희망도 없이 그냥 되는 대로 살아 나가는 흐릿한 눈빛들이었다. 이집트인들 사이에서 두드러진 태도의 하나는 어떤 일이 일어나든 간에, 어쩔 수 없는 숙명론적인 인생관이 지배적이라고 한다. 이집트 아이들의 곱고 매혹적인 검은 눈빛이, 숙명론에 지배하지 말고 진취적인 눈빛으로 발전하였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본다. {2007.3.12 글}

87. 유람선의 기억
복잡다단한 카이로에서 40층 높이의 대 피라미드들과 스핑크스에 눌려지내다가 4일째 되는 날, 이집트 역사상 가장 거대했다던 파라오의 아름답고 환상적인 신전을 보러, 꼭두새벽에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나갔다. 사막서 불어오는 모래바람 때문에 새벽 시간을 택해서 안전 비행을 해야 하는 공황은, 마치 사람들의 아우성으로 난민수용서처럼 보였다. 그 와중에 비행기를 두 번씩이나 갈아타고 무사히 최남단에 있는 아부심벨(Abusimbel)에 도착했다.

건물이라곤 찾아 볼 수도 없는 사막 천지와 나일강 줄기만 보이더니, 말로는 크기를 다 표현 할 수도 없을 정도의 거대한 바위가 보인다. 바위 앞면에 앉아 있는 웅장한 파라오 왕의 조각상을 바라보면서, 호화찬란했던 파라오의 시대를 엿 볼 수 있었다. 카이로에서는 피라미드의 거대하고 웅장함에 주눅이 들었었는데, 이곳 아부심벨은 장엄한 조각상의 신전 앞에서, 숨이 막힐 듯한 감동이 온 몸에 전율하는 듯 하였다.

거대하구 웅장한 건축에 위축되어서 그런지 그날따라 나라는 존재가 아주 작게만 보여진다. 또 다시 나일강의 아름다움과 장대함을 보러 아스완(Aswan)행의 비행기를 탔다. 남쪽으로 내려와서 그런지 따사로운 봄 햇살이 느껴져 왔고, 나일강 위에서 “펠루카”라는 돛단배들이 돛을 세우고 바람을 타고 항해하는 정경이, 고요한 도시의 파노라마 같았다. 이제부터 유람선에서 3일간 숙식을 하면서, 나일강 물줄기를 타고 북쪽으로 항해를 하면서 종교적인 건축물과 신전을 보러 중간중간 육지를 밟는다고 한다.

이집트에 도착하자마자 몇 시간만 푹 잠을 자고 여행을 했으면 했는데, 아침식사를 마치고 곧 여행이 시작되었다. 강행군의 일정으로 여행단 전원이 피곤함을 떨치지 못하고 과로를 한 탓인지 배탈들이 나기도 했었다. 3일간 유람선에서 느긋하게 휴식을 한다고 생각하니 긴장과 피로가 풀리는 듯 했다.

유람선을 탄다고 해서, 영화에서 본 호화 유람선을 타보는가 싶어 기대를 했었는데, 생각보다 후락해 보였고, 배 안에서 기름 냄새가 풀풀 풍겨져 나왔다. 3일간 어떻게 지내나 걱정 먼저 앞선다. 배 안에서 식사를 마치고 숙소가 배정된 방으로 들어갔다. 작은 배 안의 침대위에 담요를 접어서 만든 오리가 손님을 반겨주는 듯해서 반가웠다. 좁은 방이었지만 호텔 방처럼 있을 것이 다 갖추어져 있었고, 생각지도 않은 오리의 이벤트가 나의 마음을 온화하게 만들었다. 창문을 열고 끝이 없어 보이는 나일강의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물들어 온다. 이런저런 감동과 함께 배 안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여행객을 싫은 유람선들은 나일강 물줄기에 10척이 넘게 선착되었다가. 배정된 여행객들을 싣고 동시에 나일강 물줄기를 따라 항해를 한다. 육지에 있는 신전을 돌아 볼 때도 같은 시간대에 선착되었다가 같이 출발하고, 모르는 외국 여행객들과 눈인사를 주고받으니깐, 생각했던 선박여행이 그다지 지루하지만은 않았다.

이집트는 관광수입으로 많은 소득을 이루어서인지, 유람선에서도 여행객을 위한 프로그램이 재미나게 짜여 있었다. 그중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이 있다면, 이집트 옷을 입고 무도회 겸 게임을 하는 것이었다. 그 날 밤의 무도회를 위해, 잠시 주어진 시간에 육지에 널브러져 있는 상점을 돌아다니면서, 옷과 치장을 해야 할 도구들을 사러 다녔다. 그 억척같이 바가지를 씌우려는 이집트 상인과 흥정을 하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부랴부랴 비슷비슷하게 생긴 배의 통로들을 거쳐 우리가 거처하는 배로 들어왔다. 마련해준 칵테일들을 마시면서, 저녁에 있을 무도회의 옷들을 펼쳐 보이며 희희덕 거렸다.

저녁 무도회에 참석한 여행객들은 젊고 나이 듦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껏 치장들을 하고 모여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집트 옷으로 바꿔 입어서 그런지 이집트 사람처럼 변해 버렸다. 꾸미고 나타난 여행객들의 의상도 특색이 있었지만, 나의 의상도 뒤떨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 클레오파트라가 입은 듯한 드레스를 사서 입고, 어느 날 돛단배를 타고 나일강을 항해 해 주던 할아버지 선장이, 이집트의 전통 춤을 흥이 나게 추고 나서, 작은 보따리를 풀어 헤치고 물건을 팔아 달라고 해서 샀던 굵직한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그리고 여행첫날, 대형 피라미드 옆에서 길을 막는 카이로의 아이들 성화에 산 스카프를 알라딘에서 나오는 주인공처럼 머리에 둘러 감쌌다. 그리곤 손에 뭔가를 들었으면 해서 생각 한 것이, 아스완 신전 근처에서 코 흘리게 꼬마 아이가 이집트 악기인 듯한 앙증스러운 것을 들고, 열심히 줄을 당겨 음을 내는 모습이 귀여워서 사진을 같이 찍고, 사탕 사 먹을 돈을 손에 쥐어 주니, 그 해금 같은 악기를 막무가내로 가지라고 한다. 그 악기 생각이 문역득 나서 악기를 손에 들고 거울을 비쳐본 나의 모습이, 그럴듯한 파라오의 왕비로 변신이 된 듯한 착각을 가지게 만들었다.

화려한 이집트의 의상들을 입고 유람선에서의 무도회와 게임은 이국의 여행을 그윽한 아름다움으로 물들이는 듯 했다. 아울러 그 날에 진행된 두 번의 게임은 나의 우승으로 ‘그레이트'와 ‘챔피언'이란 영광의 소리를 들으면서 나일강을 항해하는 배 안에서의 기쁨이,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간에도 전해져 온다.

유람선에 오르던 날, 배에서 나는 기름 냄새 때문에 어떻게 지내나 걱정을 했었는데, 배 안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지고, 하룻밤만 지새고 나면 홍해로 출발한다고 생각하니 아쉬움 마음이 일기 시작했다. 매일 유람선에서 베풀어주는 티타임을 즐기면서, 멘 발인 채로 긴 갑판 위를 자유스럽게 오가며, 나일강의 물줄기를 사진에 담았다. 물줄기 사이로 끈임 없이 펼쳐져 있는 황량한 사막과 농토, 억센 잡초들이 나일강의 아름다움을 저하시키기도 했지만, 갑판 위에서 보는 해질 무렵의 나일강은 나의 가슴을 붉게 물들이는 감동을 안겨 주기도 했다. 쟁판처럼 타오르던 나일강의 노을에 찻잔을 들어 올려 안녕을 고한다. {2007.3.3 글}

86. 이집트의 슈사인 보이
카이로의 어느 골목에서 '원 달러'에 구두를 닦아주겠다고 내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구두닦이 소년과 마주치었다. 이집트는 어린 코 흘리게 아이들도 관광객을 상대로 물건을 파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옷에 구두약이 묻어 있는 소년의 얼굴을 쳐다보니, 숯으로 그린 듯한 선명하고 굵직한 눈썹과, 검고 말똥말똥한 눈동자에 이끌리어진다. 그리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영화의 한 장면처럼 몸을 구부리고 붉은 색으로 치장한 구두닦이 통 위에 발을 얹혀 놓았다.

기름때가 묻어 있는 손끝으로 구두에 구두약을 여기저기 묻히더니, 긴 무명 헝겊을 꺼내 즐겁게 흥이 나서 구두를 닦는 손놀림이 예사롭지가 않아 보였다. 구두 위의 작은 공간 위에서 가슴을 끌어 안 듯 돌아가는 손동작이 은반 위에서 춤을 추는 듯한 착각을 가지게도 만든다. 그러한 상상과 어설픈 몇 마디의 대화가 오가다 보니, 어느새 색을 분갈 할 수도 없이 석회 같은 먼지에 덥혀있던 구두가, 반짝반짝 빛을 내면서 브라운 색으로 되돌아 왔다.

구두를 닦기 전에 허름한 골목에서 부산히 사진을 찍던 나의 모습을 보았는지, 아니면 구두 닦은 값을 받기가 미안했던지, 구두닦이 통 위에 폼을 잡고 앉더니 자신의 사진을 찍어도 된다고 한다. 그러지 않아도 이집트 아이들의 인상이 점점 강하게 접해져 와서, 그들의 사진을 담고 싶었는데, 사진을 찍으라하니 편안한 마음으로 이집트의 구두닦이 소년의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관광버스가 떠나려하자, 어느 틈에 건널목을 뛰어 왔는지 차가 복잡한 길을 빠져나갈 때까지 손을 흔들면서 구두를 닦을 때 흥이 나서 짖던 웃음을 연신 내 보인다.

이집트여행을 하고 돌아와 보니, 구두를 너무 혹사 시켰는지 아니면 평소에 발이 편해서 줄창 그 구두만 신은 탓인지, 구두의 옆 축 가죽이 밀려나 수선을 할 수도 없게 되어 버렸다. 망가져 버린 구두를 들여다보면서, 카이로 골목에서 깔끔하게 구두를 닦아준 소년의 밝은 얼굴이 떠오른다. 언제부터인가 못쓰게 된 물건은 과감히 버려야 정리정돈이 된다는 생각에 아쉬움 없이 처치를 했지만, 이집트의 구두닦이 소년을 떠올릴 생각으로 신을 수 없게 된 구두를 잘 보관해서 오랫동안 간직해 두려한다. {2007.2.26 글}

85. 카이로의 거리
10시간이 넘는 오랜 시간을 태국 비행기와 이집트 비행기를 번갈아 갈아타고 이집트 수도인 카이로(Gairo)에 도착하였다. 새벽에 도착한 카이로의 기온은 겨울이라지만 시원하면서도 쌀쌀한 느낌이 들었다.

호텔에서 이집트 음식으로 이른 아침식사를 하였다. 상상했던 음식에서 강한 향내가 배어 나 올 줄 알았는데, 누구나 입에 맞을 정도의 향이 가미된 음식들이었다. 오랜 비행으로 지쳐서 입맛도 없을 것이란 생각을 저버리고, 이국의 맛을 즐기며 카이로의 첫 코스인 박물관을 가기 위해 느긋이 커피를 마시면서 피로를 풀었다.

관광버스가 카이로 한 복판으로 들어서자, 차량들 속에 푸성귀와 야채를 가득 싫은 당나귀가 비좁은 거리를 딸까닥거리며 짐수레를 끌고 가는 모습이 보인다. 마치 동화에서 봄직한 나라에 온 것이 아닌가 착각이 들기도 했다.

번화한 곳으로 들어 갈수록 그러한 생각도 잠시잠깐, 동화 같았던 카이로는 한 치의 여유도 없이 꽉 들어찬 차들로 붐비었다. 엉겨 붙어있는 낡은 차들에서 뿜어 나오는 매연으로 도시가 뿌옇게 흐려져 있었고, 차들의 경적소리와 함께 이슬람 신자들의 기도시간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도 들린다. 거리곳곳, 눈만 내 놓고 온 몸을 가려 늘어지는 옷을 입은 여자들과 머리에 똬리를 틀어 만든 듯한 두건을 쓰고 다니는 남자들 틈 속에, 몸에 끼는 옷을 입은 젊은층들이 엉켜서 카이로 거리를 활보한다.

생소한 광경을 보며 둥그래 있는 내 눈을 의심하게 만든 것은, 아는 사람이라 태워 주었는지는 모르지만, 진행해 달리는 자동차를 향해 뛰어 올라타서 뒷 트렁크 위에 한가로이 앉아 가기도 하구, 다른 한편에서는 미워 터지게 사람들을 태운 버스가 우르르 떨어지기 일보 직전인데도 뒷사람이 안간힘을 다해 바쳐가며 떠나기도 한다. 인구와 차량들이 카이로에 집중해서 복잡한 것도 있겠지만, 내 눈에는 교통 신호등도 안 보이고 차선도 없는 것 같다. 서로들 마구 달리면서도, 차량들 속을 비집고 건너는 사람들을 교묘히 잘도 피해 지나간다. 그 같은 광경을 보고 있노라니, 부닥칠 것처럼 날렵한 운전으로 몸을 움츠리게도 만들지만, 그들의 운전 솜씨는 어느 누가 보아도 묘기를 보는 듯 할 것이다. 차간의 거리는1, 2센치 간격들이다.

관광버스 안에서 본 카이로의 모습은 복잡다단하게 얽혀져 있는 도시 같았다. 고가도로 사방에 흙으로 만든 집이 보이는가 하면, 높은 빌딩의 멋진 건물 사이로 돔형 지붕의 고딕사원들이 보이고, 길고 늘어지는 로브를 입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청바지를 입은 사람들이 거리를 다닌다. 화려한 차와 짐수레를 끄는 나긋나긋한 당나귀가 동시에 출현해 다니는 카이로의 거리는 고대문명과 현대문명이 같이 공존해 사는 도시란 느낌이 들기도 했다. {2007.2.20 글}

84. 발표하지 못한 글
2008.6.10
작년 1월 말경 이집트 여행을 12일간 다녀왔다. 돌아와서 이집트에 대한 기행문을 쓰느라고 열중했던 생각이 난다. 그렇게 생각을 더듬고 고심해 썼던 여러 편의 글들이 바이러스에 걸려 없어지기도 하고, 나머지 글들은 못 알아보는 글로 변해버렸다.
이렇게 자료들이 없어 질 적마다, 내가 컴퓨터를 잘못 다루는 것이 아닌가 싶어 속상하기 짝이 없다. 한동안 컴퓨터의 내문서에 들어 갈 적마다, 읽을 수 없게 된 이집트 글들이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컴퓨터를 손봐주는 학생의 힘으로 다시 정상적인 글로 회복이 되었다. 날아가 버린 몇 편의 글은 어쩔 수 없지만, 다시 회복된 글들은 나의 노트란 에 나누어서 옮겨 보려 한다.

83. 옥상에서
2008.6.9
아파트의 멘 꼭대기 층에 살아서 그런지, 찌는 듯한 여름이 오면 집안이 후끈후끈 달아오른다. 오늘도 저녁밥을 부리나케 해 먹고 아파트 옥상 위로 더위를 시키러 올라갔다. 대충 운동을 하고 누울 수도 있게 만든 의자에 몸을 막긴 후에 하늘을 쳐다보니, 벼라별 모양으로 변해지는 구름의 모양새가 참으로 재미나다. 두둥실 떠다니는 구름이 사람이 되었다가, 동물로 변해지기도 하고, 가려졌던 초승달이 보이는가 하드니, 어느새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안는 것이 숨박꼭지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런 잡념 없이 움직이는 구름의 형상을 바라보고 있는 마음이 즐겁기만 하다.
복잡한 도회의 주거 공간이지만, 오늘따라 풋풋한 시골 흙 마당에 펼쳐 놓은 침상 위에 누워 있는 기분이 든다.

82. 뿌우우~ 아저씨
2008.6.7
매년, 어김없이 찾아드는 여름밤이 되면, 아파트 문을 다급히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10년이 넘게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사시는 이웃 아저씨인데, 꽃을 보러 내려오라신다. 지금이야 꽃이 피었다고 하면, 하던 일을 제쳐놓고 밤에 핀 꽃을 구경하러 내려가지만, 예전에는 1층 아파트에 사시면서 정원 앞에 놓고 기르는 화분의 꽃을 가지고 웬 수선을 떠시나 싶었다. ‘탄화'라는 그 꽃은 1년에 단 하루만 피는 꽃인데, 그것도 밤 시간을 택해서 희디흰 목젖을 내비치고, 일년간 움츠리고 있었던 기량을 한껏 과시하듯, 당당한 자태로 탐스러운 모양새를 들어낸다. 함지박 만한 꽃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총총히 떠있는 반짝거리는 별 밤에, 밤꽃의 향기를 가슴 깊숙이 빨아들이면서, 그 날 밤을 축하하듯 사진에 담아 두었던 기억도 난다.
이웃 아저씨께서는 나에게 10년이 넘은 오랜 세월을 친딸처럼 대해 주시었다. 저녁에 강아지를 운동시키러 아파트 정원을 거닐고 있으면, 영락없이 그분을 만나게 된다. 별 다르게 하시는 일이 없으시니깐 식사를 하시고 나서, 가고 오는 사람들과 이야기하시는 것을 큰 낙으로 삼으신다. 젊으신 엄마들이나 내 나이 또래의 아주머니들은 그 아저씨가 보이면 옆길의 통로로 비켜 다니신다. 그분의 주특기라면 10년 간 하셨던 말씀을 하시고 또 하신다. 그러다가 이야기에 빠져 흥이 나시면, 방귀가 뿌우우~ 나오는 것도 아랑곳 안으시는지, 옆에 앉아서 놀던 강아지가 놀라서 도망을 가도 태연한 자세로 말씀을 하신다. 이러한 아저씨의 모습을 보면서 아주머니들이 가던 길을 피해서 돌아가는 원인을 알게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의 이 곳은 농토였다고 한다. 이 근방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대대로 논농사와 밭농사를 지으셨다니, 옛 농사 시절이 한없이 그리우셨을 것이다. 시골의 정감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10년 간 되풀이 하셨던 농사얘기를 진지하게 잘 들어 드렸던 것 같다. 평소에 소일거리로 아파트 부근의 공터에다 야채도 심으시고, 짚신이나 노끈을 만들어 쓰는 ‘모아이'란 푸성귀를 심어서 그것을 거둬들일 때쯤에는, 한국서 먹어보질 못했을 거라고 하시면서 손수 만드신 ‘모아이' 국을 냄비 째 들고 오신다. 이파리를 짓이겨 씻어서 고구마를 잘게 썰어 넣고, 가는 멸치가 둥둥 떠 있는 푸른빛의 국물 맛은, 풋풋한 농촌의 흙 냄새가 배어나는 국이란 생각을 가지게 만든다.
이제는 직접 끓이셨다는 ‘모아이’국도 먹기가 틀렸구, 희귀한 꽃구경을 하러 서둘러 내려갈 일도 없을 거며, 그분의 뻔한 농사얘기를 들으며 뿌우우~ 소리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그동안 정이 많이들은 이웃을 남겨두고, 옛 농터 자리에 집을 지어 이사를 가시었다. 가끔 아파트 정원을 거닐면서 허전한 마음을 감출 수 없는 것이 무언지 모르겠다. 그동안 슬금슬금 뒷길을 택해 다니셨던 아주머니들이 제 길로 다니시지만, 나와 같은 마음인지 아무도 없는 빈집을 한번씩 넘겨다보고 지나신다.

81. 5월의 마지막 날
2008.5.31
맑고 아름다운 5월도 오늘이 지나면 또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예전에는 날짜가 가면 가나보다 했는데, 나이가 들어 갈수록 바람처럼 가버리는 세월을 붙잡아 둘 수 없음에, 허허로운 마음이 되곤 한다.
아랑곳 않고 흘러가는 시간이기에, 하루를 성실히 맞으면서 보내야지 하는 마음이 일지만, 그것도 마음뿐인지 생각처럼 옮겨지지가 않는다. 이러한 생각을 염두 해서인지 어영부영 지낸 날은, 내 불편한 마음을 많이도 용서해 주려는 습관까지 생기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잘못들을 되풀이하면서 살아가는 것이겠지 하는 안위를 해 보기도 한다.
5월의 마지막 날에, 내 자신과 약속을 나누어 본다.
아름다울 수도, 고달플 수도 있는 삶이지만, 집착과 욕망에서 벗어나 낙관적인 생활을 하며, 내 작은 생활 이야기들을 기록 할 때는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써야 하고, 다시 오지 않는 날들을 위해 성실한 태도로 임하면서, 평범하고 진솔 된 하루를 맞이하자는 약속을 하여 보았다.

80. 공포의 비
2008.5.30
대만의 5월은 해가 내리 쪼이는 와중에도 뜸금 없이 장대 같은 소낙비가 인정사정 없이 내릴 적이 있다. 가끔 고속도로에서 이렇게 퍼부어 대는 비를 만나게 되면, 창 밖의 모든 것들이 아물거리는 통에, 힘을 가한 내 몸이 장작개비처럼 굳어 가는 느낌이 들곤 한다.
이런 사나운 소나기는 고사하고, 차 속을 뚫고 들어 올 것 같은 억센 비와 천둥과 갈라지는 번개 불들이 여기저기 내리 칠 때는, 차를 세워 놓을 수도 없고, 앞차의 흐물거리는 희미한 깜박이 불만 어렴풋이 주시하면서, 주행을 해야하는 심정이 암담하기 짝이 없다. 이런 와중에 지나가는 트럭의 물까지 뒤집어 쓸 경우에는, 빠르게 왔다갔다하는 윈도우 브러시의 수고와 움켜진 두 손이 운전대에 가해져도, 차의 한 쪽 바퀴가 들려 뒤집힐 것처럼 중심을 못 잡는다. 이런 상태를 공포 속을 헤맨다고 하면 맞을 것 같다.
이렇게 애 간장을 다 태우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언제 그런 억센 비가 내렸나 싶게 강렬한 태양 빛으로 변해 있다.

79. 장수 꽃
2008.5.28
한 달에 한번씩 남편의 고혈압 약을 받으러 종합병원에 갔다. 약을 받는 정문 옆에는 작은 꽃집이 하나 있다. 오늘따라 장수 꽃이라고 적혀 있는 꽃이, 꽃집 앞에 올망졸망 나열되어 있다. 남편을 생각하면서 미니 장수화분을 하나 사서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구경을 하였다.
층 층으로 올려져 있는 두툼한 푸른 잎사귀 위로, 조만하게 생긴 붉은 꽃망울들이 아래 위 옆으로 자잘하게 붙어 퍼져있다. 그러한 모양새가 마치 폭죽이 터지면서 불꽃이 퍼져 나가는 느낌이 들면서, 생동감과 희망을 안겨준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그제서야 장수 꽃이라는 이름이 참으로 안성맞춤 인 것 같아진다. 손바닥 위의 꽃을 들여다보면서 이런저런 상상을 하다가, 약을 타는 순서를 지나 뜨려 잠시 더 기다린 후에 약을 받아 들고 병원 문을 나왔다.
병원에 갈 적마다 주차하기가 힘들어서 병원 근처에서 기다리는 남편에게 차창안으로 꽃을 내밀면서 "장수하세요"하니깐 어떨떨한 기색을 짓다가 이내 고마워 한다. 여느 때처럼 밖에서 커피를 마시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집으로 돌아 왔다.
장수 꽃을 들고 집안으로 들어선 남편은, 나이가 많이 들어 늙어 있는 강아지에게 꽃을 주면서 "장수하세요"한다. 작은 꽃 하나로 두 사람에게 축복된 말을 나누게 될지 몰랐다.

78. 대만의 새 지도자
2008.5.20
오늘은 대만의 새 정부가 들어서는 날이다. 8년 간 침체되고 암울했던 시대를 접고, 청렴한 지도자인 마잉지오 대통령이 나라살림을 맡게되었다.
새 지도자 부부의 근검절약은 예전부터 널리 알려져 왔기에, 대만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마잉지오 대통령은 타이페이 시장으로 8년 간 재임했으면서도, 30년이 넘어가는 허름한 서민아파트에서 생활을 하며, 매일 아침에 조깅을 하는 습관으로 운동화가 달아 해지면, 그 운동화를 깁고 기워서 못 신을 때가지 신는다고 한다.
부인은 전형적인 직업여성으로써 남편이 시장으로 재임하는 기간, 한번도 시장실에 드나들지도 않고 가정과 자신이 다니는 은행 법무 일에만 전념을 했다고 한다. 대통령 취임식 전 만해도 평소처럼 청바지 차림에 시내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고, 남을 의식 안하고 사는 곧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 앞으로도 남편의 뒤바뀐 운명에 아랑곳 않고, 직장을 계속 다니면서 나설 자리에만 남편을 배려한다고 한다.
이러한 모습이 남다르게 보일 수도 있겟지만, 변함 없이 살아가는 모습이 돋보인다. 이렇게 근검 절약하는 청렴한 지도자와 곧은 성품의 소박한 부인으로 인해, 국가의 큰 발전이 있기를 바란다.

77. 팝콘
2008.5.18
맛있게 팝콘을 튀겨 만드는 찻집에 들러서 커피와 팝콘을 시켰다. 그 집의 팝콘은 향도 좋지만, 마른 옥수수 알맹이들의 변한 모양새가 유달리 나의 눈을 즐겁게 만들기도 한다. 오늘도 유리 그릇 속의 팝콘 식구들이 총 집합을 하여, 자유자재로 한가한 시간을 즐기고 있다.
무성히 피어있는 노리끼리한 꽃들 주위에는 노랑나비와 흰나비들이 날아다니고, 그 꽃 속에는 벌과 벌레들이 달라붙어 있다. 그리고 슈나이저처럼 긴 수염이 달린 강아지가 토끼를 잡으려고 뛰어 다니기도 하고, 수북히 쌓인 목화 솜 위에는 두리뭉실한 펜더가 여유롭게 뒹굴고 있다. 그 옆에서 밤색 줄무늬를 두른 너구리는 펜더를 지켜보면서 코웃음을 치고 있다. 풍성하게 털을 뒤집어 쓴 양도 킹콩과 이티처럼 생긴 팝콘 때문에, 주눅이 들어 경직된 얼굴을 하고 몸을 움츠리고 있다. 그리고 팝콘이 담긴 그릇 모서리에는 무수히 많은 소라가 닥지닥지 붙어있고, 산호와 화석 같은 팝콘들이 그 주위를 지키고 있다. 바닥에는 브로치와 귀걸이 모양을 한 것들이 뒤엉켜 있기도 한다.
이렇게 여러 모양을 지닌 팝콘 하나하나를 눈으로 즐기고 연상을 하면서, 어느 새에 그 고소한 팝콘을 다 먹어 치어버렸다.

76. 효성스런 마음
2008.5.17
중국 사천대지진으로 많은 사람들이 생매장되어 죽어 가는 것을 텔레비전을 통해 보면서, 1999년 대만도 대지진을 겪었기에, 내 가족이 처한 아픔처럼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들 본다.
사천의 어느 시골 초등학교는 동체가 폭싹 주저앉아, 콘크리트에 깔려 요행히 목숨을 건지 한 학생의 두 다리를 절단해야한다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하늘도 무심하시지 하는 생각만 든다. 그 어린 여학생은 자신이 커서, 돈을 벌어 양부모를 보살피고 집안을 돌 봐야 하기 때문에, 다리를 절단하면 아니 된다는 간절한 울부짖음에, 내 자신까지 부끄러운 마음이 들게 만들었다.
맹목적으로 사랑을 베푸는 부모들 밑에서 자란 도시학생들로써는, 이런 갸륵하고 효성스러운 마음가짐은 찾기 힘들다는 생각을 하여 본다.

75. 로또의 꿈
2008.5.5
혹가다 로또를 사면서 가지게 되는 생각이 있다. 6개의 숫자가 메겨진 반드르르한 종이가 기계에서 스르륵 밀려나오면서, 로또에 대한 상상과 꿈이 펼쳐진다. 부풀릴 때로 부풀어진 꿈속으로 빠져 들어갈수록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 지다가, 함박웃음으로 변하면서 가슴까지 콩당 거린다. 그리곤 셀 수도 없을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에 두려움이 일기 시작한다. 그러다간 벅차고 두렵지도 않을 만큼의 부담 없는 액수의 돈이 내 손에 지어주기를 바란다.
이러한 꿈을 가지게 하는 종이 조각의 생명을 알리는 밤 시간이 되면, 역시나 했던 꿈이 산산이 부서 깨어진다. 그리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애지중지 했던 얄팍한 종이를 구겨 박살을 내어, 쓰레기통에 던져 버려야만 하는 초라한 신세로 만들어 버린다.
언제인가 법정스님의 글을 대하면서, 욕심을 탈피한 생활로 소박한 하루를 맞이한다면, 나의 마음도 아무런 동요 없이 고요하게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겠다 싶었다. 이렇게 자신과의 약속을 누누이 어기고, 로또를 사려고 달리는 자동차를 급히 세워 달라고 하는 나의 속마음은 탐욕을 안고 살아야 하는가 싶다.
오늘도 몇 주간 당첨이 안 된 로또의 꿈을 펼치려는 사람들이 가는 곳곳, 길길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당첨을 알리는 저녁시간이 되면, 허망한 꿈과 실망을 안겨 주리라 생각하지만, 로또의 꿈을 버리지 못하는 마음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74. 미안했던 마음
2008.4.30
매번 화분에 담겨있는 예쁜 꽃들을 사 올적마다 마음 한 켠에는 미안한 마음이 일곤 한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면서도 하늘거리는 꽃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발길이 멈추어서 이 꽃 저 꽃 사게된다. 그렇게 사 온 화분들을 잘 키우면 괜찮은데, 물을 많이 주워서 뿌리가 썩기도 하고, 수시로 물을 주는 것 같은데도 눈 깜박 할 사이에 시들해 지기도 하고, 태양 빛이 강하게 들어오는 창문 앞에서 말라죽게도 만든다. 그렇게 버려진 꽃들을 볼 적마다, 다시는 꽃 파는 근처에 가지도 말자고 다짐을 하면서도 마음처럼 아니 된다.
이번 구정을 앞서서도 집안을 밝게 만든다는 이유로 꽃시장에 가서 탐스럽게 피어있는 수국과 몇 가지의 화분을 사 와서 집안에 놓고 좋아라 했던 생각이 난다. 탁자 위에 올려놓은 수국의 꽃 뭉치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알찬 꽃무더기를 이루면서 생기 왕성하게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눈요기를 하고 즐거워했으면서, 꽃에게 바치는 정성이 모자랐는지, 넓은 수국의 잎사귀가 하나하나 갈색으로 변하면서 꽃들도 같은 색으로 변해버렸다. 그리곤 어느 틈에 흉하게 말라버렸다. 물을 정성스럽게 준 것 같은데, 태양이 많이 들어오는 창 앞에 놓아두어서 그랬는지, 구제 할 수 없이 말라 죽어버렸다. 바삭바삭 말라버린 잎사귀와 꽃들을 싹둑싹둑 잘라버리고 빛이 덜 드는 곳에 밀어 두어 보았다. 오며가며 초라하게 남아있는 수국의 마른 가지를 들여다보면서, 미안한 마음이 많이도 들게 만들었다.
그렇게 초라하게 버티고 있던 앙상한 가지에서, 어느 날 갑자기 연 초록빛 새순이 돋아 올라오기 시작한다. 매일매일 가지마디에서 내 미는 새 순의 모습이 탐스러운 꽃무더기를 이루었을 때처럼 싱그럽고 활기차 보인다. 말라죽었으려니 하면서도 아쉬운 마음에, 볕이 안 드는 곳에 밀어 두고 오며가며 미안한 마음을 전하기는 했지만, 내 죄스러운 마음을 전해 받아드렸는가 보다.
요즈음 몽실몽실 쏟아 오르는 연두 빛 새 순을 들여 다 보면서, 내 미안했던 마음을 삭히며 지낸다.

73. 교통 마비
2008.4.22
'안드레아 보첼리'의 콘서트가 있던 저녁, 이르게 저녁밥을 해 먹고 근처의 공연장으로 차를 타고 갔다. 공연을 하는 야구장이 집 근처라 시간의 여유를 두고 갔다고 생각했는데, 공연장 부근에는 이미 많은 인파와 차들로 난리법석이 되어버렸다. 벌써 바리게이트가 쳐져 있고, 승용차들을 돌려보내는 경찰들의 호루라기 소리로 정신이 없었다.
우리도 차를 돌려 주차 할 곳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집 근처까지 오게 되었다. 온 김에 차를 아파트 주차장에 두는 게 맘 편할 것 같아 주차를 해 놓고, 택시를 타고 갈 생각이었는데, 근처의 택시들은 야구장 가는 손님으로 빈 택시가 없다고 한다. 걸어서 20분 거리를 가려면 시간이 좀 촉박했지만,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 시간에 맞춰서 갈 것 같아 부랴부랴 발걸음을 옮기었다.
공연시간이 임박해서 가는 사람들의 마음은 다 똑 같은지, 길길이 밀려있는 택시에서 내려 걷는 사람도 있고, 헐레벌떡 뛰어 가는 사람도 보이고, 선수처럼 재빠르게 달리는 사람도 보인다. 꼬맹이들은 데리고 온 부모들은 아이들과 같이 합세해서 뛰고, 어느 노부부의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늦게 뛴다고 연신 뒤를 돌아보면서 빨리 뛰라고 재촉한다. 그렇게 야구장으로 들어가는 모습들이 친선 마라톤 대회 선수들처럼 보인다. 나 또한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면서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관중들의 들떠있는 분위기를 접하자마자 공연은 시작되었다.
오늘 22일 공연이 있는 서울 올림픽 체조장에서도, 아름다운 목소리를 듣기 위한 사람들로, 공연장 부근이 교통 마비로 혼잡할거란 상상을 하여 본다.

72. 아름다운 라이브 콘서트
2008.4.19
어제 타이즁 야구 경기장에서 '안드레아 보첼리'의 라이브 콘서트가 있었다. 대만의 중간지점인 타이즁에서 단 한번의 공연으로 막을 내리는 탓에, 타지방에서 몰려온 음악 애호가들로 큰 성황을 이루었다. 2만 명이 모인 경기장 안의 밤 분위기가 들떠 있는 와중에, 드디어 '안드레아 보첼리'의 아름다운 천상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의 강렬한 목소리와 고음으로 잘 다듬어진 음성이 마무리지을 적마다, 관객들은 너도나도 없이 열광들을 한다.
대형 스크린에 비추이는 그의 모습은 지긋이 눈을 감고, 참으로 겸허한 모습으로 청아한 노래를 불러재낀다. 간간이 미소 짖는 그의 입 모양새는 천진한 어린아이처럼 보인다. 앞이 안 보이는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그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있기에 문화, 언어, 장애 또한 뛰어 넘을 수 있는 것 같다.
17곡을 부르는 동안, 관중들의 혼을 다 빼앗아 간 듯 매혹된 상태에서 공연이 끝이 났다. 아쉬움과 감사로 우뢰와 같은 박수 세례를 하는 관중들을 위해, 4곡의 감동스러운 앙콜송으로 보답을 하였다.
교양 악단과 지휘자, 매력적인 성량을 가진 게스트들의 뒷받침으로 '안드레이 보첼리'의 대만 공연은 환상의 무대를 만들었다. 다음 순회공연은 4월 22일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있다고 한다.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안드레아 보첼리'의 공연이 한국의 음악 애호가들을 매혹시키리라 믿는다.

71. 타이베이 101 전망대
2008.4.15
얼마 전 여권을 바꾸러 타이베이를 갔었다. 한국 대표부가 타이베이 101 빌딩 옆 근처에 있어서 전망대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현재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508미터의 높이를 가진 101층 짜리 건축물이고, 거대한 외형은 대나무가 마디마디 하늘도 뻗은 형상을 하고 있다. 여느 때는 층 층으로 올려진 왕관의 아름다운 외형으로 보이기도 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최고층 빌딩이 내가 살고 있는 대만에 있다는 것에 자랑스러운 생각이 들어진다.
5층 매표소에서 89층의 전망대까지, 37초만에 사뿐히 올라 와준 엘리베이터의 속도가 믿어지지 않는다. 순식간에 오른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타이베이의 시가지가 장난감처럼 보여진다. 이른 대 낮이라 그런지 작은 모형 같은 건물들이 어수선하게 흐트러져 보인다. 야밤에 올라와 보았으면 시가지의 불빛으로 불야성을 이루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89층 계단을 통해 91층의 옥외 전망대에 도착해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두둥실 떠다니는 구름이 생동감 있어 보인다. 심하게 부는 바람 탓에 101층 타워를 올려다보는 내 몸이 구름과 함께 떠다니는 것 같은 착각이 일어진다. 이렇게 높은 곳에 올라와 하늘과 맡다을 것 같은 거리에 서 있으면서, 변화무상한 글로벌 시대에 발 맞추어 나갈 수 잇는지 내 자신에게 물어본다.

70. 꽃 향기, 사람 향기
2008.4.12
사계절이 뚜렷하지 않은 대만에서는, 탐스럽게 피어있는 꽃들을 어디서나 사시사철 볼 수 있다. 평소에 아파트 정원을 거닐다가 화들짝 피어있는 꽃들을 보게되면, 나도 모르게 허리를 구부리고 꽃 향기를 흡수하느라 눈을 감고 몰입 할 적이 잇곤 한다.
가끔 소박한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에게서 배어 나오는 은은한 사람의 향기가 화사한 꽃 향기처럼 감미로울 때가 있다.

69. 동떨어진 느낌
2008.4.11
작년에 개통된 대만의 고속철도를 기회가 있으면 한번 타 봐야 되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면서도 타이페이나 다른 지방에 일이 있어 갈 때는, 2시간 거리니까 승용차로 갔다오게 된다. 어제는 나의 한국 여권 유효기간이 다 되어 새 여권으로 바꿔야 한다기에, 타이페이를 필히 가야만 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고속철도를 타고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날라 갈 것처럼 쌩하고 달리는 고속 철도의 속력으로, 내 가슴이 울렁거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고속철도의 좌석번호를 찾아 앉았다. 절반도 차지 않은 승객으로 철도 안이 썰렁해 보였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창 옆에 앉아 출발하기를 기다렸다. 고속 철도가 움직이자 사람들은 올려져 잇는 커튼을 내리고, 잠을 청하기 시작한다. 나는 잠시 후에 느껴져 올 짜릿할 기대에 부풀어오른다. 그런데 내가 가지고 있었던 고속철도의 기대는 온데간데없이, 그냥 종전의 열차를 탄 속력처럼 느껴져 오기만 한다.
대만의 4,5월에는 맑은 하늘이 느닷없이 검게 변하면서 인정사정 없이 소나기가 퍼부어 내릴 적이 많다. 그럴 때는 온 사방의 것들이 아물거리고 흐물거리게 보인다. 고속철도의 빠른 속력으로 그렇게 밖의 정경이 펼쳐질 줄 알았는데, 아물거리기는커녕 그냥 평소처럼 온전히 잘도 보인다. 마시는 뜨거운 거피도 내 옷에 쏟아져 업어지면 어쩌나 했던 걱정 없이, 2시간 거리의 타이페이를 50분만에 덤덤히 잘 도착했다. 시속 300킬로미터의 속력이라는 팜플렛의 기록이 와 닿지 않을 뿐이다. 첨단 기술의 새로운 교통수단으로 쾌적한 승차감은 있었지만, 왼지 모르게 내가 가졌던 생각과 너무 동떨어진 느낌이라서 그런지, 너무 지나친 환상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진다.

68. 나만의 패션쇼
2008.4.6
요즈음, 완연한 봄이 왔는가 싶더니, 어느새 30도가 오르내리는 여름 날씨로 변해 버렸다. 그래서 오늘은 겨울옷을 정리해 집어넣고, 여름옷을 꺼내 놓으면서 나만의 패션쇼가 시작되었다. 먼저 남편을 소파에 앉으라고 해 놓고, 꺼내 놓은 여름옷 중에서 군복 문양의 치마 바지에다 젊은이들이 미니로 입는 풍성한 원피스를 내려트려 입고, 색이 옅은 웃옷에 불로치나 헝겊으로 만든 여러 종류의 액세서리를 어깨 위에 한데 몰아서 꽂았다. 그리고 얼룩말 무늬를 한 높은 구두를 신고 거실로 나와 모델들처럼 워킹을 하며, 남편의 의견과 평가를 기다린다.
나는 색에 대한 감각이 남편보다 더딘지, 옷을 차려입고 나가려면 어딘지 어색한 부분이 잇는 것 같아서, 다시 옷을 갈아입다가 화장이 지워지기도 하고, 머리가 망가져 외출할 때 기분을 상 할 적이 잇곤 한다. 그럴 적마다 남편에게 미비한 구석을 알려 달라고 하면, 잘도 꿰뚫어 알려준다. 지적해준 데로 옷을 바꿔 입고, 액세서리도 옷 색에 맞춰 달면 이상스러웠던 부분이 금새 다른 분위기로 변해버린다.
그래서 색에 민감한 남편의 눈을 중요시하게 되었구, 몇 년 전부터 한철 입을 옷들을 대강 7벌 정도 정해 놓고, 옷에 어울리는 장식도 구분해 놓기도 한다. 그렇게 정해 놓은 옷들을 갈아입고 나가니깐, 시간도 절약되고 예전처럼 옷장에 옷이 많은 것 같은데도 뭘 입어야 되나 하는 고민을 안 해서 좋다.
그런 연유로 바뀌는 계절마다 나만의 패션쇼를 가진다. 무대 뒤에서 눈코뜰새 없이 옷을 갈아입는 모델들처럼, 나도 방안에서 바쁘게 옷을 갈아입고, 거실로 나와 워킹을 했던 옷들을 입고 외출을 한다. 옷에 별 관심이 없는 대만사람들이지만, 내가 입은 옷들이 특별해 보이는지 호감을 가지고 보는 시선이 싫지 않다.
가끔 쇼 윈도우에 멋지게 걸려있는 명품 옷들을 보면, 고급스런 옷감과 감각 잇는 디자이너들의 손을 거쳐 나온 옷들이라서 그런지, 입고 싶은 마음에 물끄러미 쳐다볼 적이 잇곤 한다. 그러나 나만의 패션쇼를 해서 어울리게 구색을 맞춘 옷들이, 값비싼 옷에서 느끼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어서 좋다.

67. 슬로바키아의 구슬 목걸이
2008.4.4
어제 저녁 친구가 보내 온 소포를 끌러보니, 아기자기한 기념품들이 많이 들어 있었다. 그 중에서 구슬로 끼어 만든 슬로바키아 목걸이가 눈에 먼저 들어 왔다. 손에 잡히지도 않을 것 같은 잘디 잔 알갱이의 구슬이 겹겹이 여러 줄에 끼어 매달려 있었다. 회색 톤의 구슬에서 뭔지 모를 빛이 발산하는 느낌이 좋아서 밤중인데도 보내 온 목걸이를 집에서 오래 걸고 있었다.
친구 내외가 호주에 살면서, 슬로바키아 국적을 가진 남편을 따라 16년 만에 고향을 찾는 친구의 마음 또한 설레고 낯설었을 것 같다. 보내 온 사진을 보니, 역사가 오래된 고풍스러운 건축과 뾰족뾰족 하늘을 찌를 것 같은 장엄한 카톨릭 교회와, 거대한 성들을 위주로 한 사진과 더불어 샛노랗게 물든 잎새들이 떨어지는 한적하고 평화로운 슬로바키아의 사진들을 많이 찍어 보내왔다. 감회가 깊었던지 사진 한 장 한 장 자상하게 느낀 소감을 일일이 적어 놓았다. 그리고 잠시 여행을 하고 왔었다는 체코의 프라하 건물들은, 바로크 풍의 건축 양식 하나 하나가 다 예술이구나 싶을 정도로 낮선 두 나라의 사진들을 오랫동안 감상하게 만들었다.
오늘 아침, 외출을 하면서 목에 건 슬로바키아의 작은 구슬 목걸이에서 오묘한 빛이 거울에 반사되어 비춰진다. 문득 평생을 같이 해야 하는 반려자들의 인연 또한 구슬 목걸이의 오묘한 색처럼, 그렇게 맺어 지는가 싶어진다.

66. 활기 있는 아침식사
2008.4.1
오랜 기간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게 몸에 배었는데, 올해부터는 건강을 생각해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려고 노력한다. 하루에 한번씩 몸에 햇볕을 받는 게 좋다는 소리를 듣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치장을 하고 근처의 멕도날드나 아침 식사하는 곳을 찾는다. 아침을 챙겨 먹다보니, 예전과 다르게 활기 있는 하루를 맞이하는 것 같아 기분도 상쾌해 진다. 그리고 그동안 남편에게 빵 조각이나 우유로 대신해서 먹게 했던 아침을, 같이 나누게 되니 미안한 마음도 줄어드는 것 같다.
오늘도 멕도날드에서 영양식이란 가벼운 음식을 먹으면서, 문득 10여 년 전의 일이 떠오른다. 시카고에서 전시회를 갖었을 때, 일주일동안 같은 음식점에서 아침을 먹었던 일이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곱게 단장한 노부부들이 아침식사를 하러 음식점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게된다. 옆 테이블에 앉은 노인 분들과 안면이 없는 것 같은데도, 서로들 인사를 하고 얘기들을 나누신다. 간간이 다른 노부부들이 들어와도, 앞서처럼 인사를 주고받으면서 웃음소리도 들리고, 오랫동안 이야기들을 하신다. 연시 따라주는 커피를 마시면서, 여유롭고 충만한 아침을 보내시는 게 참으로 좋게 보였던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한국과 대만의 노인 분들이 딱한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환경과 생활이 그들처럼 조성되지 않는 것도 있지만, 서로들 속박된 생활을 하게 되다보니, 그러한 자유스러움을 만끽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오늘도 바쁜 생활과 습관들로, 먹자마자 자리들을 떨고 일어나지만, 나는 시카고의 노부부들을 생각하면서 좀더 여유스럽게 아침을 먹으려고 했다.

65. 대만의 재래 시장
2008.3.30
열흘에 한번씩 대형 마켓에서 사 온 물건을 사용하고 음식을 해 먹다가, 일이 있어서 마켓을 가지 못하게 되면, 가까운 재래시장을 들르기도 한다. 대만의 재래 시장은 하루에 두 번 장이 선다. 오전에는 7시부터 11시까지 물건을 팔고, 오후에는 3시부터 6시까지 장이 선다. 그래서 오후에는 황혼시장이라 불리기도 한다.
외식문화가 발달된 대만이지만, 부지런한 부녀자들은 손수 지어 만든 음식을 가족과 함께 먹기를 원한다. 그래서 어느 재래시장을 가든 발 뒤들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분주하다. 나 또한 대형 마켓이 들어서기 전에는 재래시장이나 슈퍼에서 장을 봐 왔다. 그러다가 대형 마켓을 다니면서 느끼는 다른 점이 있다면, 많은 물건을 집어 담아도 어느 누구와 말 한마디 할 필요가 없지만, 재래시장은 안면이 있든 없든 눈인사라도 주고받게 된다. 그리고 오가는 사람들에게 음식이나 과일을 먹어 보라고 때어 주기도 하고, 한동안 재래시장에 안 들리면 한국에 갔다 왔느냐고 묻기도 하면서, 활기 있는 시장 안의 열기와 인정미로 푸근해지기도 한다.
그렇게 인정미가 가득한 곳이지만, 나는 재래 시장을 가게되면 돼지고기 파는 골목과 닭을 파는 두 골목은 피해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산다. 잠시 장이 서기 때문인지 돼지고기를 냉장고에 넣었다가 꺼내서 파는 것이 아니고, 큰 탁자 위에 핏물이 떨어지는 고기를 부위 별로 나열해 놓고 썰어 판다. 고기 덩어리는 그렇다고 쳐도 눈을 감고 처연히 웃고 있는 듯한 돼지머리를 볼 적마다, 나도 채식주의자가 되었으면 할 적이 잇곤 한다. 닭을 파는 골목에서는 철장 안에서 퍼덕거리며 모이를 쫓아 먹는 닭을 꺼내, 펄펄 끓는 가마솥에 집어넣었다 빼서, 늘어져 있는 닭의 털을 벅벅 뜯는다. 그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울렁거리고, 하루 온종일 눈에 어려서 기분이 울적할 적이 잇곤 한다.
그런 연유로 재래시장 가는 것을 꺼려하는 이유도 있지만, 인정미가 흘러 넘치는 재래 시장에서 솜씨 좋으신 아주머니들이 만드신 전통음식을 몇 가지만 사야지 하고 들르면, 골목마다 먹어 보라고 주는 것을 일일이 받아먹고, 떨이로 다 가져가라고 하는 할머니의 물건들을 사느라, 내 두 손에는 오늘도 각종 봉다리들이 가득 들려져 잇곤 한다. 아울러 매번 농후하고 풋풋한 인정미도 함께 흡수해서 온다.

64. 솔숲 길
2008.3.9
뉴욕서 구성된 신운 예술단 무용 티켓을 받은 게 있어서, 이곳서 다녔던 중흥 대학을 찾았다. 새로 신축된 강당에 많은 사람들이 관람 할 수 있게 건축되어 있어서, 대형 쇼들이 있으면 이곳 대학 강당서 발표회를 가진다. 신문에 대대적으로 광고를 했는지, 무용을 보러 온 사람들의 차량이 정문을 통과하느라 길길이 서 있다. 문학원 근처에 차를 세우고 강당 쪽으로 향했다.
문학원을 통해 강당으로 가는 길목에는 작은 솔숲이 하나 있다. 우거져 있는 소나무 때문인지, 찌는 듯한 더위에도 햇빛을 막아주고 항시 시원한 느낌을 주었던 곳이기도 했다. 그 곳에 들어서니, 예전과 다름없이 작은 새 들이 소나무 주위를 날면서 조잘거린다.
유학시절, 기숙사나 도서관이 답답하게 느껴질 적에는 이 숲을 자주 찾았다. 솔숲 옆에 붙어있는 문학원 강의실에서 의자 겸 책상 하나를 짊어지고 나와, 햇볕을 가려주는 소나무 밑에 옮겨 놓고, 시험 공부도 하고 시험을 엉망으로 치르고 나왔을 때는, 곧바로 그 우거진 솔숲으로 들어가 속상함을 달래기도 했었다. 늦은 저녁에도 울적한 마음이 들어지면, 그 곳을 찾기도 했지만 낮에 친근했던 솔숲이 어둑어둑해지면 연인들의 장소로 변해버린다. 그때 그 아름다운 광경들이 왜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고, 내 아지트 하나가 빼앗긴 듯 아쉽기만 했었는지. 20년이 다 되어 가는 무거웠던 기억들이, 파릇파릇 피어오르면서 내 급한 발길을 잡는 것만 같다.
관람을 마치고 모교를 한바퀴 돌아보았다. 문학원도 다른 곳으로 이동을 했고, 도서관도 새로 단장되고, 모르는 건물들이 교정에 꽉 들어 차 있다. 솔숲 길로 되돌아 걸으면서, 내 기억 속에서 오랫동안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든다.

63. 날아가 버린 글
2008.3.7
어제, 우체국 아저씨에 대한 글을 써서 홈페이지에 올리려는 순간, 컴퓨터 자판기를 잘못 눌렀는지, 글이 눈 깜박 할 사이에 없어져 버렸다. 너무나 황당한 나머지, 이렇게도 불행한 일이 벌어 질 수가 있나 싶기도 했다. 그래도 그 글이 컴퓨터 속 어딘가에 꼭꼭 숨어 있기를 바라면서, 저장된 곳을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결국에는 온데 간데 없이 날아가 버렸다. 많은 시간을 공들여 작성된 글이 갑자기 사라진 탓인지 진땀을 많이도 흘렸던 하루였다.
전에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걸려서 귀중한 자료들이 다 날아가 버린 적이 있었다. 그때는 고치는 도중에 저장된 자료들이 없어 질 수도 있겠다는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어서 그랬는지, 이번처럼 그렇게 황당하고 불행하다는 마음까지는 안 들었던 것 같다.
굳어있는 내 얼굴을 보고, 남편은 왜 그러냐고 한다. 나에게 불행한 일이 벌어졌다고 하니, 걱정하는 기색으로 들어 보자고 한다. 우체국 아저씨에 대한 글을 홈페이지에 올리려는 순간 삭제된 이야기를 하니깐, 우체국 아저씨 흉을 봐서 없어졌는가 한다. 그러면서 그런 일이 닥쳤을 때는,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고 하는 것이지, 불행한 일이 벌어졌다고 하는 것이 아니 라고 일러준다. 그 뜻을 모르고 한 소리는 아니지만, 내가 느끼는 그 당시의 마음은 정말로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되었기에 그렇게 말이 나왔는지 모른다.
아무튼 우체국 아저씨에 대한 글을 다시 홈페이지에 올려놓았다. 시간을 늦추면 머리 속의 기억이 점점 상실될 것 같아서, 가지고 있던 기억들을 어르고 살살 달래면서, 많은 시간을 들여 다시 되살려 놓았다. 앞으로 나에게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

62. 우체국 아저씨
2008.3.6
우리 집 동네에 있는 우체국 아저씨 이야기를 하고 싶다. 작은 우체국이라서 그런지 우편물을 받는 창구는 2곳 밖에 없다. 왼쪽 창구의 아저씨는 50대시고, 얼굴은 잘 생기셨는데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는 모습이 60대처럼 푹 늙어 보인다. 오른쪽 창구의 아저씨는 60대이시고, 얼굴은 보편적인 아저씨들 인상인데 편안하게 웃음 띤 얼굴이 50대처럼 보인다.
매번 우체국 안으로 들어서면, 왼쪽 창구 아저씨의 화내는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고객이 가지고 온 소포나 우편물에 허술한 곳이 발견되면, 불만을 토하는 소리가 발 뒤들 틈도 없는 우체국 안을 더 소란스럽게 만든다. 한국 사람들 같았으면 불친절한 언행에 싸움이 났어도 수십 번을 났었을 탠데, 대만 사람들은 좋은 게 좋은 건지, 고스란히 듣고만 있는다.
그런데 오른쪽 창구의 아저씨는 항시 웃음을 띄우면서 친절하게 고객을 맞는다. 사람들이 단단히 묶어서 가지고 온 소포에 영수증 부칠 곳이 없으면, 끈을 풀어서 영수증을 부치고 다시 단단히 소포를 묶어 주신다. 만약 그 소포가 왼쪽 창구 아저씨 쪽으로 갔다면, 불호령이 났을 것이 뻔하다. 며칠 전에 한 무더기의 소포를 가지고 오른쪽 창구 앞으로 갔는데, 오전에는 남편이 소포를 부치러 왔는데, 낮에는 내가 가지고 왔느냐고 하시면서 웃는다. 그렇게 동네 아저씨처럼 고객을 맞는다.
어느 날 오른쪽 창구 앞에 사람들이 많아서 왼쪽 창구로 가게 되었다. 그날따라 소포의 내용물을 하나 빠트리고 안 쓴 게 있어서, 영어로 그 내용물을 알려 달라고 하면서도 못 알아들으면 화를 낼 것이 뻔해서, 귀를 창구 쪽에 바짝 데고 긴장을 하기도 했다. 나는 그 우체국의 단골 손님이고, 외국사람이라서 봐 주는 건지 불친절한 말은 삼가는 기색이다. 고객들이 그 심통스러운 아저씨의 성격을 아는지, 왼쪽 창구로 가서 줄서는 것을 꺼려한다.
그렇게 두 분의 우체국 아저씨는 고객을 맞이하는 서비스가 정 반대이다. 문득 왼쪽 창구의 아저씨 얼굴이 호도 껍질처럼 보인다. 사람들의 얼굴은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10년이란 세월이 뒤바뀌어 보이기도 한다는 것을, 두 분의 우체국 아저씨를 보면서 더 실감했다.

61. 시원 섭섭한 마음
2008.3.5
스페인 순회전을 마치고 국제 채묵 작품들이 집으로 도착했다. 지금부터 내가 도와야 할 일은 작품들을 국내외로 돌려보내는 일만 남았다. 며칠동안 국내외 26개국에서 참가한 170여 점이 넘는 작품을 포장하고, 주소를 쓰고, 우체국에 가서 부치고 하느라 집안이 부산스러웠다.
매년 하는 일이지만, 번거로운 때도 있었기에 남편이 기획하는 전시 활동을 그만 맡아서 했으면 할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사명감을 가지고 묵묵히 이끌어 나가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음을 알기에, 나 또한 오랜 시간을 뒷전에서 성원해 주면서, 작가들의 헝겊 작품들이 도착되면 한 점 한 점 다리는 일이 내일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11년 간 심혈을 기울여 기획했던 국제전이, 올해부터는 타이즁 시청에서 많은 비용을 들여 주관하게 된다. 민간단체에서 기획했던 전시가 정부의 도움으로 국제적인 아트 훼스티발로 발 돋음을 하게 되었다. 평면 작업이야 계속 도움을 주어야 하겠지만, 그 밖의 동적인 프로그램으로 시민들이 승용차에다 직접 핸드 페인팅을 한다든가, 작가들의 작품을 레이저로 비쳐 빛을 발하는 아트 쇼,,,을 시 정부에서 다양하게 색출해 내어, 매년 타이즁의 특색으로 시민과 함께 자리 할 수 있는 훼스티발로 지정이 되었다.
작년 국제전을 앞두고 강아지로 인해 큰 상처를 입은 일이 있었다. 붕대로 오른 손을 동여 메고, 왼손으로 구겨진 작품을 다리면서 힘이 들기도 했었다. 앞으로는 작품을 다리고, 소포를 쌀 필요도 없이 모든 것들을 정부에서 도맡아 주관한다고 생각하니, 시원 섭섭한 마음이 동시에 들어지기도 한다.
10년 넘게 남편이 기획한 국제전을 지켜보았다. 꿋꿋한 사명감으로 일군 일이 헛되지 않게 좋은 결실로 맺어진 그간의 노고에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박수를 보내며, 당연히 내 자신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60. 내 강아지의 오줌
2008.2.29
마루 바닥에 흥건히 싸 놓은 강아지 오줌을 신문지로 덮어 흡수시켜 놓았다. 그리고 다시 걸레로 닦고 모기 약을 듬뿍 뿌려 놓는 것이, 요즘 들어 내 새로운 일이기도 하다. 기르던 강아지에게 별 방법을 다 취해도 아랑곳하지 안고 쌓던 자리에 다시 오줌을 싸 놓기도 하고, 이제는 안방, 내 화실 가리지 않고 오줌을 싸면서 오만 장난까지 다 해 놓는다.
어려서부터 오줌똥을 잘 가려 싼다고 입이 달토록 칭찬을 해 주었는데, 늙어지다보니 여기저기에다 저지레하는 것이 베란다로 착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닥치는 곳에 오줌을 싸 놓기 일쑤다. 얼마 전부터 집안에 지린내가 진동을 해서, 천연덕스럽게 오줌을 싸고 있는 강아지를 부뚤어 혼 줄을 내주려고 했는데, 사시나무 떨 듯 하면서 내 눈을 바라보는 것이 애초로워 야단도 못 쳤다.
그렇게 바들바들 떠는 것을 보면 자기 잘못을 알면서 하는 짓 같다. 그리고 나를 더 번거롭게 하려고 작정을 하려는지, 저지레를 한 곳을 빨리 치워놓아야지 안 치우고 있으면, 그 긴 수염으로 오줌을 휘휘 젖기도 하고, 발로 밟고 왔다갔다하다 미끄러지기도 하는지, 온 몸이 오줌 투성이로 변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난장판을 해 놓는다.
그 짓거리를 하는데도 정리를 안 하는 기색이면, 만신창이로 변한 몸을 이끌고 우리 있는 곳으로 와서 낑낑거리고 자리를 떠나지 안는다. 어느 날 강아지 오줌을 닦으면서 "내 인생이 니 오줌 훔치는 인생이 된거냐구" 한탄을 하고 있으니깐, 나를 빠끔히 바라보고 있는다. 그렇게 귀여운 모습을 한 '페인팅'이 사람의 나이로 치면 90이 되어 가니, 노망도 들 나이라 여겨진다. 치근하기 그지없다.
강아지가 평소에 물을 많이 먹기는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하루에 한 바가지 양의 물을 먹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오줌도 자주 싸게 되고, 날 부단히도 번거롭게 만든다. 오늘도 책상머리에서 바쁘게 일을 하고 있는데, 또 저지레를 했는지 축축이 젖어 있는 수염을 하고 낑낑거리고 서 있다. 그 모습이 왜 그렇게도 사랑스러운지 강아지 오줌을 치우는 인생이 되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여 보았다.

59. 고향에서 보내 온 산나물
2008.2.28
엄마 아시는 분이 소포를 보내 오셨다. 상자를 열어 보니 마른 산나물이다. 대 보름날 내 생각을 하고 사 놓은 나물을 이제야 부친다고, 고향 생각을 하면서 먹으라고 하신다.
우리나라는 산에서 나는 산나물 종류가 많은지, 이름도 알 수 없는 많은 종류의 나물이 상자 가득히 담겨져 있다. 내가 얼핏 알아보는 나물은 고사리, 취나물, 고춧잎, 호박고지, 도라지, 가지말림, 무말랭이, 고추부각,,,,.처음 보고 듣는 '곤드레'라고 적혀 있는 나물도 있다.
대만서 강원도의 치악산에서 자란 산나물을 먹을 수 있게 해 주신 그분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리고 우리 조상들의 지혜스러움으로 이렇게 추운 겨울에도 말린 나물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이래저래 감사한 마음이 많이도 들어지는 날이다.
무말랭이와 고춧잎을 물에 불려 무쳐 놓고, 몇 가지의 나물을 삶기 시작했다. 거기서 퍼져 나오는 김이, 시래기 나물을 삶을 때의 냄새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른 나물 속에서 우러나오는 냄새가 집안 가득히 배면서 고향냄새로 변해진다.

58. 야릇한 맛의 커피
2008.2.27
어느 날 내가 앉아 있는 테이블 위에 3잔의 커피가 올려져 왔다. 내가 즐겨서 그 곳을 가는 탓인지, 커피를 만드는 청년과 아무런 말 한마디도 주고받지 안았는데, 어느새 잘 아는 사이가 된 듯 되어 버렸다. 그래서 인지 커피의 맛을 봐 달라고 한다.
새 메뉴에 올려 볼 생각으로 몇 가지의 원두를 혼합해서 연구했다고 한다. 마셔 본 후에 한가지만 선택해 달라는 부탁이 조금은 부담스러웠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시험관 글라스에 담긴 커피에 코를 대고 살며시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평상시와 다르게 조심스럽게 한 잔 한 잔 입 속으로 커피를 들여 넣었다. 진한 커피의 향이 입안에서 똑 쏘듯 번지다 부드럽게 퍼져 나간다. 그리곤 시고 새콤한 맛으로 변해지는 느낌이 입안에서 오래 남는다. 그 야릇한 맛이 좋아서 처음에 마신 커피가 독특하다고 알려 주었다.
그 커피가 새 메뉴에 올라간 다름부터는 그 커피만 시켜서 마시게 된다. 한 방울 한 방울 내려서 만들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기다린 시간이 아깝지 않게 만드는 커피이기도 하다.

57. 즐겨 찾는 커피 집
2008.2.26
내가 자주 가는 커피 집이 있다. 붉은 색 커튼이 사방으로 쳐져있고, 조명은 어두컴컴한데다 검은 테이블과 붉은 소파가 정연히 배열되어 있는 곳이다. 벽에 걸려있는 액자 속의 얼굴들이 이상스럽게 일그러져 있기도 하고, 얼굴에 반쯤 가려져 있는 눈이 멀뚱히 무언가를 주시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아라비아 나이트에서 나오는 큰 호리병들이 병정처럼 군데군데 서 있다. 조금은 기이하고 엄숙해 보이기도 하는 그 곳에서, 흐물거리는 아랍 풍의 음악을 들으며, 야릇한 맛의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평상시의 마음과 달라지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인지 '데이비드 존슨'이란 커피 집을 찾으며 마음을 가다듬고 오기도 한다.

56. 삼류 운전
2008.2.25
평소에 내가 운전하는 자동차의 속도는 세월아 내월아 하듯 한다. 뒤에서 빵빵 소리가 나든 말든 내식데로 굼벵이처럼 운전을 한다. 그래서 삼류운전을 한다는 소리를 늘 듣지만, 나는 내가 운전하는 속도가 안전한 거리를 유지한다고 생각해서 인지, 굼벵이 같은 습관이 고쳐지지가 않는다.
대만은 한집에 한두대 정도는 스쿠터가 없는 집이 없을 정도로 많다. 그리고 교통질서를 잘 지키지 않는 관계로, 언제 어느 때 스쿠터가 차선으로 들어와 아슬아슬한 곡예를 할는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교통사고 원인의 대부분이 스쿠터로 인해서 발생이 되기도 한다. 그 때문에 나의 운전 솜씨가 삼류가 된 이유가 있다. 어느 틈인지 손살같이 차선으로 들어 온 스쿠터들은 서커스단을 방불케 하듯 차들을 비집고 들어와 곡예를 한다. 오늘도 곡선으로 휘어진 그들의 유연한 몸이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조바심을 했다.
스쿠터를 피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내 식으로 천천히 운전을 하여야만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사고가 나더라도 가볍게 날 것 같은 마음에 이런 습관이 생기었는지도 모른다. 평소에 나의 성격이 이렇게 느긋한 것도 아니고, 거북이 같이 느린 사람들을 보면 답답해 할 적이 많은데, 운전을 할 때만은 앵앵 소리를 내고 급히 달리는 경찰차도 내 차를 비켜 간다.
그동안 삼류 운전을 한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별다른 사고 없이 그들의 아찔한 곡예를 보면서, 오늘도 나는 운전을 한다.

55. 공허한 구석
2008.2.24
우편물을 가지러 나가는데, 아파트 정원의 벤치에서 안면이 없는 할아버지가 꾸벅꾸벅 졸고 계신다. 졸고 계시는 그분의 얼굴이 참으로 고독해 보인다.
문득 나도 늙어서 저렇게 고독해 보이면 어쩌다 하는 생각이 든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 한 구석에는 공허하고 고독한 면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특히 화려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나 박수를 많이 받는 특수계통의 사람 또한, 내면의 세계는 공허한 면이 없지 않아 있을 것 같다.
부부지간이라도 그 깊은 내면의 세계는 서로 알지 못하기에, 허전한 구석을 메워야 하는 몫은 자기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믿고 충족시키는 방법을 부단히 찾으면서, 낙관적인 마음으로 이끌어 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54. 가지나물
2008.2.23
냉장고 문을 열고 무슨 반찬을 해야하나 뒤척여보니, 오래 전에 사 놓은 한봉다리의 가지가 말라가고 있었다. 더 놓아두었다가는 버리게 될 우려가 있을 것 같아서, 부랴부랴 찜통에 물을 올려놓고 가지를 씻기 시작했다.
대만의 가지는 한국 것에 비해 세 배 정도나 길어서 한 가락으로 반찬을 만들어도 넉넉한 양이 되기도 한다. 둘이서 먹기에는 많은 양인 것을 알면서, 봉다리 안의 것을 다 쪄서 식힌 후에 한국식으로 무쳤다. 상큼한 냄새 때문인지 밥을 푸기도 전에 손가락으로 몇 가닥 집어먹었다.
별 반찬 없이, 큰 대 접시에 한 움큼의 가지나물만 덩그러니 있는 게 미안했지만, 밥을 먹기 시작했다. 한 젓가락의 가지 나물을 입에 넣은 남편은 너무 맛이 있다고 하면서, "왕이 먹는 맛" 같다고 눈이 휘둥그레진다. 왕이 먹는 음식을 먹어 보지도 않고 어떻게 그 맛을 아느냐고 하니깐, "한국 연속극을 봐서 알지" 한다.
생각지도 않은 말을 들을 때마다, 기쁠 적도 있지만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도 한다.

53. 정겨운 라면
2008.2.22
'후루룩 후루룩' 입으로 들어가는 라면의 느낌이 좋다.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면서 먹는 라면 맛은, 무엇과도 비길 수 없이 맛도 있고 속도 후련해진다.
그래서 혼자 집에 있는 날은 의례 한국라면을 끓여서 먹는다. 반찬 없이 편리해서 먹기도 하지만, 김이 무럭무럭 나는 냄비 속에 얼굴을 파묻고 '후루룩' 소리를 내고 먹는 라면 맛은, 내 자신을 자유분방해지게 만들기도 한다. 라면이란 것이 사람을 초라하게도 만들지만, 여느 때는 이렇게 자유스러운 마음을 가지게도 한다.
매번 라면을 먹으면서 작은 양은 냄비를 하나 사서, 거기다 라면을 끓여 뚜껑에 올려서 먹어야지 하면서도 여태 사질 못했다.
문득 들려오는 옛 사람들의 음성이 그윽하고 정겹듯이, 누런 양은 냄비 속의 라면 또한 그와 버금 가리라 본다.

52. 그 옷
2008.2.21
내가 가장 좋아했던 옷 하나가 있다. 그 옷은 사시사철 입어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도록 만든 옷감 때문인지, 15년이 넘도록 계절에 관여하지 않고 즐겨 입었던 옷이기도 하다. 그 기름한 브라운 색의 겉옷에, 금칠을 두른 반달 같은 단추가 달려있는 옷을 입을 적마다, 멋이 깃들어든 옷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러던 그 옷이 너무 오래 입고 다닌 탓인지, 여러 군데가 낡고 삭아서 감이 겉잡을 수 없이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결국에는 입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 옷을 입은 날은 멋쟁이가 된 양, 기분까지 좋게 만들어 주곤 했었는데,,,.하면서 아쉬운 마음이 들뿐이다.
남들이 생각하기에, 그 오랜 세월동안 같은 옷을 질리지도 않고 입는다고 고리타분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내 몸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면 옷감이 달아서 못 입을 때까지 끈질기게 즐겨 입는 것이, 나의 습관이기도 하다. 그래서 옷장에 15년 전에 산 옷들이 정감 있게 걸려있기도 하다.
이렇게 아쉬운 마음을 가지던 중, 어느 길가의 건물 로비에 명품을 95퍼센트 세일을 한다는 현수막을 보고 구경을 하러 들어갔다. 꿈인지 생시인지 좋아했던 그 옷과 너무나 흡사한 옷이 눈에 뜨여 입어보았다. 옷 분위기도 비슷하고 색과 길이도 똑같아서 고맙고 기쁜 마음으로 옷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못 입게 된 옷에 달린 금색 단추를 잊지 못해서, 새 옷에 바꿔 달았더니 옛 옷이 되살아 난 느낌을 가지게 만들었다.

51. 대보름 전날
2008.2.20
대만은 대보름날 '탕유엔'이란 것을 끓여서 먹는다. 찐 팥에다 찹쌀 고물을 띠어서 만든 것이 한국의 동짓날 먹는 팥죽과 비슷하다. 대보름날은 가족이 다시 모여서 '탕유엔'을 먹고, 그때부터 새해의 첫 시작이 되고, 각자들의 일터로 나가서 내년에 다시 만나는 약속들을 한다. 그래서 작은 설날이라 부르기도 한다.
대보름날도 조상들에게 지내는 제사가 있기에, 하루전날인 오늘, 팥죽을 정성껏 끓여서 절에 가지고 가 풀러 보니, 물을 적게 넣었는지 달착지근한 팥 국물은 온데 간데 없어지고, 여러 종류의 색이 들어간 찹쌀알갱이가 엉겨붙어 큰 덩어리로 변해버렸다. 속상하고 죄송스러운 마음만 들뿐이다.
집에 가서 다시 끓여 올 수도 없고 해서 향을 들고 절을 하면서, 다음에 팥죽을 끓여서 올 때는 알맞게 물을 맞혀 잘 끓여 가지고 오겠다고, 나의 마음을 큰 소리를 내어 얘기를 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남편이 폭소를 터트리고 웃는다.

50. 쌍둥이 같은 사람
2008.2.19
반색을 하고 인사를 하면 항시 반갑게 맞아주던 사람이, 오늘따라 반색을 했던 나에게 예의 상으로 인사만 할 뿐, 어딘지 모르게 무색케 하는 느낌을 받았다. 잠시 후에 물을 따라주러 우리가 앉은 테이블로 왔다. 자세히 얼굴을 들여다보니 내가 알고 지냈던 사람이 아닌 딴 사람이었다.
가끔 특별한 날이 있으면 그 아늑한 음식점으로 가서 식사를 하게 된 연유가 있었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어느 날, 기르던 강아지가 온데 간데 없어져서 찾고 헤매고 다녔던 일이 있었다. 강아지가 자기 집인지 알고 다른층 아파트 문 앞에서 낑낑거리는 소리를 듣고는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오게 해서, 달달 떨고 있는 강아지에게 자신의 스웨터를 입혀놓고 주인이 찾아오기를 기다렸던 일이 있었다.그 고마운 분은 같은 동에 사는 이웃이었고, 그 음식점 매니저이기도 했다.
평소에 내 눈이 나쁜 것도 아닌데, 키와 풍채도 그 사람과 흡사했고, 얼굴도 쌍둥이처럼 빼어 닮고, 표정도 비슷하다보니 놀랍기까지 했다. 물을 따라주는 그에게 조금전의 어색함도 있었기에, 내가 알고 지내는 사람의 외모와 너무 같아서 착각을 했다고 하니깐, 이곳에 오시는 손님도 나와 같은 말을 한다면서, 웃는 그의 입 언저리가 어쩜 저렇게도 빼어 닮았을까 싶었다.

49. 하나님 아버지
2008.2.18
오밤중에 갑자기 내 몸이 흔들리는 것이 꿈인지 알았는데, 눈을 떠보니 지진으로 아파트 동체가 또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럴 때마다 후다닥 뛰어가서, 내 몸을 숨기는 책상 밑의 피난소로 들어가, 수도 없이 하나님 아버지를 되뇌인다.
대만은 1999년 9월21일 대 지진으로 많은 희생자를 내었고, 7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해서 크고 작은 지진 때문에 두려운 마음이 가시지를 안는다. 그 당시를 회상해보면, 나도 이렇게 죽는구나 했었던 공포의 기억 때문인지, 지금도 조금만 흔들리는 느낌만 나도, 소스라치게 놀라 하나님을 찾는 습관이 생겼다.
지진의 휴우증으로 신앙도 없는 내가 입버릇처럼 하나님 아버지를 찾는 것이 민망스러울 때가 있다.

48. 종교와 예술의 미
2008.2.17
대만의 불교재단에서는 가장 큰 규모의 불광사에서 미술관 개관식이 있어서 참석했다. 종교재단서 오픈한 미술관이라 조용한 의식이 있을 줄 알았는데,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해서 그 분들의 연설을 듣고 있으려면, 2시간 정도는 지체를 하겠다고 생각했다.
지루하리라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유머스러운 설명으로 종교와 예술은 내면의 아름다움을 똑같이 추구한다는 지혜로운 얘기 담들을 들으면서, 겁부터 먹었던 마음이 스르르 사라졌다.

47. 손바닥 크기의 얇은 책
2008.2.16
어쩌다 한국에 나가면 빠지지 안고 들르는 곳이 있다. 그때도 사람들로 벅적벅적한 교보 문고에 들려 무슨 책을 골라야 하나 망설였다. 그러던 중, 내 눈에 들어 온 책들은 손바닥만한 크기의 얇은 책들이었다. 범우문고에서 출판된 옛 분들의 수필 모음집들이라서 그런지, 생소한 작가들도 많았다. 책이 얇다고 생각하니 욕심이 생겨서 박두진, 조지훈, 이태준, 김태길, 윤형두, 안병욱, 장한철...의 책을 한아름 담아 왔다.
어떤 책이든 한번보고 나면, 다시 꺼내 읽어보기가 그리 쉽지 않은데, 작년에 가지고 온 이 손바닥만한 얇은 책들은, 수시로 읽어도 다시 꺼내 보게 만드는 책이 되었다. 이 작은 책들이 왜 이렇게도 매료가 되나 싶어 생각했던 날이 있었는데, 책 속에 하나같이 공통점들이 들어 있었다. 내가 느꼈던 그 공통점이란, 하잘것없는 작은 사물이나 인물들에게 삶을 느끼게 하는 애환 같은 것을 볼 수 있게 해서인지, 오래도록 여운을 남게 만들었다. 그러한 것들이 동일한 매력이었다고 생각해 본다.
아울러 고상한 필치에 반해서 많은 것을 관조할 수 있는 책이기에, 오늘도 나의 손에 이 귀한 책이 들려져 있다.

46. 사나운 바람소리
2008.2.15
"웅웅, 붕붕, 윙윙"하는 바람 소리가 사람이 울부짖는 것처럼 사납게 들린다. 온종일 삭막하게 불어대는 바람소리가 싫다.
평소에 습관처럼 "좋다" "싫다" 소리를 밥먹듯이 잘 해서 혼이 나기도 하지만, 며칠씩 바람이 불어대는 날은 입에서 싫다는 소리가 떠나지를 않는다. 에이는 바람을 맞으면서 일을 하는 것도 아닌 바람소리가 왜 그렇게도 싫은지 모르겠다.
밖에는 사나운 바람소리가 여전하지만, 집을 짖는 기계소리와 함께 바쁜 노동의 소리가 바람과 함께 들려온다. 오늘따라 투정에 가까웠던 내 소리가 한심스러울 따름이다.

45. 특별한 의미의 e-mail
2008.2.14
아침에 메일함을 체크해 보니 특별한 메일이 와 있어서 흐뭇했다. 가끔 남편과 e-mail을 주고받기는 하지만, 오늘은 발렌타인데이라서 그런지 평소의 기분과 달랐다.
수시로 나태해지려는 나에게 "담담한 생활을 하면서 예술창작에 임할 수 있는 생활 예술가가 되라는"말이 나의 주변생활의 모든 것을 아름답게 받아들이면서, 창작생활에 노력을 기울이라는 말처럼 들려온다.

44. 대만의 찰떡
2008.2.13
오늘 저녁에는 대만의 '니엔까오'라는 찰떡을 부쳐먹었다. 우리가 설날에 가래떡을 해 먹듯이, 대만에도 '니엔까오'라는 떡을 해서 먹는다. 그 찰떡을 해서 제사를 지내고, 그 떡을 먹음으로써 순조로운 한해를 맞는다는 의미도 있다
찹쌀에 흑설탕을 넣어 만든 것이 모찌떡처럼 맛이 있고, 모양과 색이 마치 도토리묵처럼 생겼다. 굳어있는 떡을 얄팍하게 썰어, 밀가루를 무쳐 계란에 씌어 부치기도 하고, 파를 잘게 썰어 계란 속에 개어 부쳐도 그 맛이 일품이다.
얌전스럽게 찰떡을 부쳐 놓기는 했지만, 남편이 먹어보고 하는 말이 '대만 며느리들 보다 더 맛있게 부쳤다'고 웃음 짖는 말이 쑥스럽게 들려온다.

43. 숯덩이로 변한 숭례문
2008.2.12
불길에 타 쓰러져 내려앉은 숭례문의 누각을 보면서, 놀랍고 안타까운 마음이 가시지를 안는다. 한 개인의 감정과 증오심으로, 600년이란 역사를 가지고 한국을 대표했던 국보 1호의 귀한 문화재가, 그렇게 허물어져 버렸으니 참으로 허허로운 마음으로 바라볼 뿐이다.
국외에서도 유명한 남대문시장을 찾는 외국인들도, 서울을 상징했던 문화재라 더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들 것 같다. 작년, 서울에 가서 숭례문을 배경으로 해서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어려서부터 남대문을 드나들고 지나쳐온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숯덩이로 변해버린 숭례문이지만, 하루빨리 복원되어서 소시민들의 삶의 터전인 남대문시장에, 정기가 흐르도록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 주길 바랄 뿐이다.

42. 제자리
2008.2.11
폭죽소리에 놀라 일어나 보니 새벽 6시다. 모든게 제자리로 돌아오려는 신호인가 보다. 구정으로 한동안 쉬었던 각종 상점들이 문을 여는지, 이른 새벽부터 신에게 지내는 제사로 잠잠하던 폭죽 소리가 또 다시 요란벅적 하게 들려온다.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은 모든 일상이 정상으로 굴러간다는 것이겠지 싶다.
나 또한 제자리로 돌아와, 노력하는 자세로 새로운 창작생활에 임해야 되겠다.

41. 꼬마 친구
2008.2.10
나의 꼬마 친구인 두 자매가 새해인사를 하러 집에 왔다. 중, 고등학생으로 변한 아이들이 내 키만큼 자란 탓인지 오늘따라 어른스러워 보인다.
네 다섯 살 때, 내 옷을 입어 보고 싶어해서 입혀 주면, 그 큰 옷을 입고 모델 흉내를 내던 생각이 엊그제 같았는데, 이렇게 성장한 아이들과 진지한 얘기를 나누면서 지내게 될지 나 자신도 생각 못했던 일이다.
옛 생각을 하면서 내 옷을 입혀 보았더니, 몸에 꼭 맞고 잘 어울린다는 생각에 아꼈던 코트를 꼬마친구인 언니에게 주었다. 헐렁한 내 옷을 입고 좋아라 했던 아이가, 허리선이 들어간 코트를 입고 이리저리 거울을 비쳐 보는 모습이 숙녀 같고 대견스러워 보인다.

40. 썰렁한 거리
2008.2.9
밀렸던 자료정리를 하면서 지내다 밖을 나가 보았다. 갑자기 추운 날씨 때문인지 사람들도 뜸하고 거리도 썰렁하다. 구정 기분이 들지 않는다.
습관처럼 잘 가던 커피 집에 가서 진한 커피를 시켰다. 또 다시 돌아 온 한해를 어떻게 보내야 의미 있이 보낼 수 있을 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에스프레소의 진한 향처럼 그렇게 보내고 싶어진다.

39. 소리가 없는 벗
2008.2.8
새해 들어 나의 말만 귀담아 들어줄 수 있는 벗이 생겨 풍요로운 설을 지낸다. 새로 맞이한 이 친구하고는 나의 계획도, 나의 희망도, 나의 속상함도, 내 마음속의 말도 다 들어 주고 포용해 줄 수 있는 소리 없는 벗이 되길 바란다.

38. 폭죽 소리
2008.2.7
20년 전, 구정을 며칠 앞두고 대만에 도착한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 어찌나 폭죽 터지는 소리가 요란한지, 전쟁이 일어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한 적도 있었다. 새벽녘에도 제사를 지내는지, 따발총을 내리 쏘아대는 소리처럼 들려와 잠을 설치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폭죽 터지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거린다.
이 곳 대만은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 말고도 하늘신, 땅신, 집신, 귀신..., 별의별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폭죽 터트리는 풍습이 오래 전부터 내려오고 있다.
그렇게 난리가 처 들어온 것 같은 폭죽 소리도 위험성의 관계로 정부에서 자제하다보니, 점점 사라져 가는 소리가 되었다. 간이 떨어질 것 같은 그 유난스러웠던 소리가 어쩌다 들려오니, 조용히 지내왔던 명절이 더 조용해지는 듯하다.

37. 절에 가는 날
2008.2.6
이곳도 명절이 돌아오면 조상들께 지내는 제사가 많다.
구정 전날 저녁은 조상께 제례를 지내고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풍습이 있다. 그래서 구정 전날을 더 중요시 여긴다.
오늘도 나는, 절에 모셔 놓은 이곳의 부모님을 찾아뵈려고 과일과 떡, 음식을 준비해서 절에 가는 마음이 바쁘고 푸근하다.

36. 작은 생활 무대
2008.2.5
새해부터 쓰기 시작했던 작은 생활의 일들을 직접 홈페이지에 올리고 나니, 자잔한 기쁨이 주어진다.
내 스스로 홈페이지의 일부를 운영하고 글을 써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학교 선생님이 숙제를 내 주신 기분으로 책상머리에 앉기도 한다.
어떠한 마음의 자세이든, 이 작은 공간이 나의 참 벗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한다.

35. 여동생 같은 동창
2008.2.4
오랜만에 이곳 동창 가족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했다. 잠시 못 본 듯하면 어느새 1년이 지나서야 보는 친구인데도 그냥 동생처럼 편하고 반갑다. 그와 나는 대학을 들어가서 졸업할 때까지 같은 기숙사의 룸메이트였다. 내가 반 아이들 보다 나이가 많이 차이나서 그랬는지, 다른 아이들은 우리말로 "언니" 아니면 "큰누나" 라고 불렀는데, 그는 유일하게 내 이름을 불렀고 지금도 그렇게 부른다.
대학 생활을 떠올릴 적마다, 뒤늦게 공부하는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구, 번거러움도 많이 끼쳤던 고마운 친구라는 생각이 절로 난다. 예전, 기숙사에서 반 아이들과 김치찌개를 끓여 먹던 입맛을 잊지 않았는지, 오늘도 김치를 한국사람처럼 밥에 올려 먹는다.
학생들을 가르치느라 바쁜 그 친구와 언제 또 만나게 될지 모르지만, 시험관을 거쳐 낳은 건강한 아들과 차에 올라 떠나는 뒷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34. 노래에 이끌려
2008.2.3
한국을 사랑하는 대만의 여학생한테서 두 곡의 한국 가요를 메일로 받았다. 아름다운 선율과 열정적인 고음에 이끌려 하루 온종일 노래를 틀어 놓았다.
음악을 들으면서, 아무것도 없는 흰 공간을 메우는 캔버스의 작업하고는 또 다른 영역임을 느끼게 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손에 일도 잡히지 않고, 노래에만 이끌려 집안을 맴돌게 한 하루였다.

33. 그 책
2008.2.2
느닷없이 새벽녘에 눈이 떠졌다. 옆에 있는 이해인 수녀님 책을 집어 들었다. 한 구절 한 구절 읽어 내려가면서 어쩜 이렇게도 맑고, 예쁘고, 순수한 글을 담아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제는 수녀님의 연세가 많이도 되셨을 텐데 하면서, 소녀 같은 마음이 참으로 부러워진다.
창밖에 동이 트려는 이른 새벽의 고요함이 수녀님의 세계처럼 평정하다.

32. 구정을 앞둔 분위기
2008.2.1
오후에 밖을 나가보니
모든게 술렁댄다
사람들의 빠른 발걸음 때문인지
상점에 놓인 물건들도 술렁거리고
견고한 건물들도 술렁인다
내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오늘따라 술렁이듯 보인다
구정을 앞둔 탓인가 보다

31. 변함 없는 마음
2008.1.31
강아지가 내 품을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다 넘어졌는데 일어나지를 못하고 아파한다. 힘주어 꽉 안아 주는 것을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 또 일을 저질렀다.
한참을 일어나지 못하고 주저앉아 있다가는, 다리 한 쪽을 질질 끌고 걷다가 쓰러진다. 그러다가 힘겹게 일어나더니 또 다시 비틀거리고 주저앉는다. 3년 전에 퇴행성 관절으로 고생을 했던 적이 있어서 크게 걱정을 했었는데, 앞으로 그런 일이 자주 있을 거라는 의사의 말이 생각난다. 많이도 아픈지 내 눈을 바라보는 물기 있는 눈망울이 안쓰럽다. 파스를 뿌려주고 다리를 주물러주었더니 좀 괜찮은지 잠을 잔다.
강아지로 인해 번거롭고 놀라운 일이 수시로 일어나지만, 애초롭고 사랑스러운 마음은 변함이 없다.

30. 그리워지는 온돌방
2008.1.30
아침에 일어나서 두툼한 까운으로 무장을 한 내 모습이 에스키모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란다로 나가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으로 덮인 우중충한 하늘에서 비까지 뿌린다. 차디찬 바람이 살을 에이 듯 파고든다. 으스스한 그런 날은 뼈마디가 아프기까지 한다.
대만의 겨울 날씨는 추어 보았자 영상 7도 인데, 어딜 가나 스팀 장치가 없으니 스산하기 짝이 없다. 어깨가 움츠려지는 이런 날은 한국의 온돌방이 그리워진다.

29. 그 콩나물국
2008.1.29
콩나물국이 먹고 싶어서 콩나물을 사왔다. 콩나물을 씻으면서 언젠가 지독한 감기 몸살로 일어서기도 힘들었는지, 꼬박 한 달을 자리에 누어있었던 생각이 난다. 그때, 고춧가루를 친 콩나물국이 너무나 먹고 싶어서 이불을 쓰고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 절박하게 먹고 싶었던 생각이 문득 나서인지, 콩나물을 씻은 후에 남편을 불렀다. 내가 만약 병이 나면, 지금 알려 준 그대로 끓여서 나 좀 먹게 해 달라고 하였다. 그때 울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콩나물국 하나 못 끌이는 자신이 미웠다고 한다.
재료를 씻고 다진 후부터는 무엇을 먼저 넣고, 어떤 양념을 넣어야 하는지 순서를 알려 주었다. 어설픈 솜씨로 소금간을 하다가 국물이 넘쳐 가스 불이 꺼지고 하더니, 그럴듯한 콩나물국 한 냄비가 식탁 위에 올라왔다.
만약 또 다시 독한 감기에 걸린다해도, 콩나물국 때문에 서러운 마음은 들지 않을 것 같다.

28. 기분을 상하게 했던 콜크
2008.1.28
새로 딴 포도주 병의 콜크 마개가 기분 좋게 올라 왔다. 그리곤 급히 한잔을 들이 마셨다. 목 줄기를 타고 흘러 내려가는 만족감을 문자로 형용하고 싶은데 도무지 생각이 안 난다.
가끔 포도주를 한잔 마시고 싶어서 마개를 열다가도, 마시고 싶은 기분이 달아 날 적이 다반사다. 돌돌 말려있는 철을 갖은 애를 쓰며 병마개에 들이밀면, 콜크가 반이 떨어져 나가기가 일쑤고 열린다고 해도 콜크 부스러기가 병 속으로 들어가 둥둥 떠 있기도 한다.
매번 실수의 연속이다 보니, 포도주가 마시고 싶어도 기분 상해지는 게 싫어서 병 따기 시도를 포기한다. 그래도 가끔 마시고 싶을 때가 있으면, 술병처럼 돌려서 여는 포도주를 눈을 밝히고 찾기도 한다. 어쩌다 찾아낸 그런 병마개의 포도주는 음식에 사용하는 것인지 맛이 덤덤하다.
그렇게 촌스러운 짖을 하다가 요 근래에 와서, 편리하게 딸 수 있는 병따개를 발견했다.
오늘도 양옆으로 달린 기러기 날개 같은 것을 내리면서 돌돌 말린 철이 콜크 속으로 들어가더니 병마개가 유연하게 올라온다.
이렇게도 쉬운 것을, 이제는 분위기를 잡고 붉은 포도주 한잔을 마시는 그 기분은 상하지 않을 것이다.

27. 혀를 깨물린 강아지
2008.1.27
문을 열고 들어 왔는데도 반가워서 날뛰어야 할 강아지가 좀 이상했다. 그리고 바닥을 보니 붉은 피가 방울방울 떨어져 있다. 가슴이 덜컥해서 강아지 털을 여기저기 뒤척여 보아도 피나는 곳을 찾을 수가 없다.
움직일 때마다 피가 털어지기에 입을 벌려보니, 입안에서 피가 마구 떨어진다. 심장이 두근거리며 다니던 강아지 병원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렸다. 강아지들도 사람처럼 흥분을 한다던가 잘못해서 혀를 깨 물을 수 있으니, 피가 멎을 때까지 물을 먹이지 말고 움직이지 못하게 안고 있으라고 알려준다.
10분쯤 후면 피가 멈춘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피가 계속 흐르기에, 가끔씩 뭘 먹다가 혀를 깨물기를 잘 하는 남편의 비상약이 생각났다. 입을 벌리고 깨물린 혀에 약을 발랐다. 금새 마비가 오는지 혓바닥을 길게 늘어뜨리더니 잠시 후에 피가 멈추어졌다.
낑낑거리는 강아지를 품안에 앉고 있으면서, 예기치 못한 이런 상황에 부닥치면서 가슴 조이고 쩔쩔 메는 부모들 심정이 헤아려 진다.

26. 나의 황금 시간
2008.1.26
새벽 4시가 되었는데도 뒤치다꺼리기만 하구 잠이 안 온다. 잠을 청해 보려고 가끔씩 마시는 포도주 한잔을 마셨다. 잠시잠깐 하늘거리더니 그새 눈이 말똥말똥해 진다. 밖에서 진한 커피를 마신 탓도 있지만,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게 몸에 배인 것 같다.
고요한 밤 시간을 좋아해서 이런 습관이 드렸지만, 이상하게 밤늦은 시각부터 새벽2시의 시간은 나의 뇌리를 맑게 만든다. 그래서 이 황금 시간을 나 홀로 탐닉하면서 지낸다.
이러한 시간을 즐기면서 간이 안 좋아진다는 소리를 늘 듣지만, 잠시간은 좀체 바뀌어지지 않는다.
건강이 나빠지면 만나 보고 싶은 사람들도 볼 수 없으니, 이번 구정을 계기로 나의 오래된 습관을 고치고 말겠다.

25. 김치 국물 같은 연속극
2008.1.25
대만은 아직도 한류열풍이 가시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채널에서 우리의 연속극을 수시로 볼 수 있다. 이전에 대만의 드라마는 연기자들의 부자연스러운 연기에 보고 싶은 마음이 달아나 버리기도 하지만, 한국 드라마가 들어오고부터는 하루에 한가지씩 꼭 보는 편이다. 한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보고도 있지만, 하나 하나 잊혀져 가는 나의 기억들을 잊지 않으려는 의미가 더 큰 것 같다.
한국연기자들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이웃사람들의 생활을 보고 있는 것처럼 편하다. 그러나 우리말로 들을 수 없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더빙된 대만 성우들의 목소리 또한 한국말처럼 편하게 들려와 불편함 없이 눈물도 흘리며 본다.
요즘 방영하는 '커피 프린스 1호점'의 시청률이 높다 보니까, 밤늦은 시간에 다시 재방송을 해준다. 그 시간 때의 방송은 생생한 우리말로 들을 수 있다고 하길래, 재방송을 한번 더 보았다. 느끼어지는 감동이 사뭇 다르다. 아직도 중국말이 서툴러서 그런 것도 있었겠지만, 모국어에 대한 애착인지 얼음이 둥둥 떠 있는 김치 국물 한 사발을 마신 것처럼 속이 시원해진다.

24. 빛 바랜 사진
2008.1.24
책을 들어 펴 보다가 뭔가 떨어진 것을 주어 보니, 20년이 넘게 흐른 빛 바랜 사진이었다. 5명의 친구가 나란히 서서 찍은 촌스러운 포즈에 웃음이 나왔다. 19살 때 대학서 만났으니 30년이 된 친구들이다. 퇴색된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많고 많은 추억이 되새겨 진다. 그때만 해도 한 동네에 다 모여 살 것처럼 하던 친구들이 이민이다, 결혼이다 하면서 오스트리아,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시애틀, 대만, 한국서 뿔뿔이 흩어져 산다. 그러다 보니 자주 만나지도 못하고 소식도 뜸하지만 그리워지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젊었던 사진 속의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20년이 흐른 후를 생각해 보니, 머리도 희어진 노인으로 변해들 있겠지 싶어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서로들 힘겹게 살지만 철없고 순수했던 마음들은 그대로 남아 있으리라 믿으면서 빛 바랜 사진을 책상 위에 기대놓았다.

23. 수선 떠는 나
2008.1.23
며칠 후 우리 집을 방문했으면 하는 여 화가의 청을 들어 놓고, 손님을 그냥 맞을 수만은 없어서, 작은 공간을 좀 넓게 보였으면 해서 가구를 옮겨 놓기 시작했다. 뛰어 놓은 소파를 한군데로 몰아서 붙여 놓고, 벽 쪽으로 붙여둔 식탁을 세로로 돌려놓으니 외래 공간이 더 넓어 보이는 듯 했다. 벽에 기대 겹쳐 둔 그림들도 남은 공간의 벽에 걸고, 장식품들도 이리저리 놓았다가 다시 바꾸기를 수십 번을 하면서, 평소 있는 그대로 보여 줄 수 있으면 더 허물없이 지낼 수도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수선을 떨다보니 어쩌다 오시는 손님으로 인해 몸살이 된통 나기도 한다.
오늘도 가구를 이리저리 밀고 들고 난리를 떨었는지, 온 몸이 으스스 떨려 온다. 그렇지만 그럴듯하게 변한 내 집의 분위기가 아기자기하고 아늑해 보여 좋다.

22. 새로 오픈한 화랑
2008.1.22
타이즁에 새로 오픈을 한 화랑에 들렀다. 화랑업계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고충을 털어놓는 요즘에, 과학 박물관 옆에 새롭게 단장된 화랑의 규모에 놀라웠다. 추상계통의 그림이 잘 배열되어 있는 분위기가 마치 외국의 화랑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쾌적한 공간에서 작가들의 경이로운 작품 한 점 한 점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나의 욕심인지 오랫동안 드나들 수 있는 공간으로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한다.

21. 격려의 공간
2008.1.21
남편은 나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지루해 질 수도 있는 하루 하루의 생활을, 무의미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하루의 작은 느낌이라도 매일매일 홈페이지란에 기록하는 것이라 한다.

기록을 남기는 새로운 공간을 위해,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사진을 택해서 어설픈 솜씨로 디자인을 해 주었다. 아울러 이번 한해도 그림을 그리면서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글을 많이 썼으면 한다는 격려의 말이 왼지 모르게 미안스럽게 들려 온다.
다음주쯤 홈페이지의 새 공간을 내 스스로 운영하게 된다. 한편으로 부담도 되지만 또 한편으로 설레기도 한다. 앞으로 나의 마음을 이 작은 공간에 채우면서 자잔한 기쁨을 얻고 싶다.

20. 젊은이들의 거리
2008.1.20
내가 사는 타이즁에서 가장 번화한 이 곳은, 사방에서 온 젊은이들 때문에 걸음을 제대로 걷기가 힘든 곳이다. 오늘도 젊은 학생들 틈에 끼어 걸으면서 내 나이로 보이는 중년층의 사람들은 찾아 볼 수도 없었다.
가는 골목골목마다 먹을 곳이 있고, 상점이 있는 반면 오만 장식품을 길바닥에 펼쳐 놓고 팔기도 한다. 길모퉁이에도 임시 칸막이를 세워놓고 옷들을 걸어 놓고 판다. 그 왁자지껄한 골목에 입시 학원들이 몰려있고, 온갖 오락장은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다.
매번 그 난리 아우성치는 곳에서 느끼는 것이라면, 젊은이들의 창의적인 유행감각과 자유스러운 그들만의 몸짓에서 뭔지 모를 젊은 활력을 전해 받는 것 같다. 그래서 잊을만하면 찾는 곳이기도 하다.

19. 꽃향기 나는 집안
2008.1.19
언제부터인가 구정이 돌아오면 화분을 사다가 집안을 장식하곤 한다. 예쁜 꽃이 핀 화분을 사 와서 집안에 놓고 보는 눈요기가 여간 아니다.
오늘도 구정을 앞세우고 화분을 사러 꽃시장에 갔다. 각양각색의 얼굴을 한 꽃들이 마냥 내 마음을 부풀게 한다.
지금, 탐스러운 연보라 빛의 수국이 거실의 탁자 위에 듬직히 앉아 있고, 바구니 속에 얹혀 놓은 어린 꽃 분홍의 난이 식탁 위에서 다소곳이 수줍어한다. 그리고 내 방 모퉁이의 작은 선반 위에서 프리지아가 하늘거린다. 그 꽃들에서 흘러나오는 옅은 향내인지, 우리 집에 봄이 먼저 온 듯한 착각이 인다.

18. 땀의 댓가
2008.1.18
12층 아파트에 사는데도 왼 먼지가 그렇게도 올라오는지 며칠 간 청소를 안 하면, 집안이 먼지투성이로 변해진다. 구정도 다가오기에 큰맘을 먹고 대청소를 했다. 주부로써 매일매일 쓸고 닦으면서 살아야 하는 게 옮음을 알면서도, 그렇게 못해줌이 죄책스러워 진다.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하루종일 정리 정돈을 하고 나니, 집안이 몰라보게 멀끔히 변해졌다. 부산스럽게 몸을 움직였는지 온 몸이 땀으로 질펀했지만 마음만은 상쾌하다.

17. 밥 3끼
2008.1.17
아침에 늦장을 하고 일어나서도 혹가다 점심밥을 준비하는 것이 귀찮아서, 꼭 이렇게 매끼마다 먹고살아야 하는가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만약 알약 같은 것 한 알갱이만 먹으면 한끼의 모든 영양이 충족되어서 끼니 걱정도 안하고, 하루 종일 밥 먹다 시간을 다 허비하는 것 같지 않는 상상에 웃음을 지어본다.
한편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렇게 간단히 끼니가 해결된다면 생활의 변화도 없고, 모든 것이 다 무의미해질 것 같은 생각도 들어진다.
얼마 전 조지훈 선생님의 글 속에 어느 친구가 "그대는 무엇 때문에 사느냐" 하길래 진실로 대답할 말이 없어서 "살기 위해서 산다는" 말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란 글을 보면서 살기 위해서는 삼시세끼도 꼭 챙겨 먹어야 한다는 말도 내포된 것이겠지 하면서 책을 읽었다.
예전부터 나는 하루에 밥 3끼를 먹고사는 시간이 너무나 많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지금도 하루에 한끼 식사로 살아가는 삶이었으면 하는 마음은 변해지지가 않는다.

16. 한국을 사랑하는 여학생
2008.1.16
한국을 너무나 좋아하는 여학생을 만나러 커피숍으로 갔다. 그동안 몇 개월 만나지를 못했는데, 사자 머리처럼 파마를 하고 나와서 나를 놀랍게 만든다.
내가 사는 타이즁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타이페이의 예술 음대에 들어간 후, 서로 만날 기회가 없다가 겨울 방학을 맞아 만나게 되었다.
그는 열렬한 한국의 팬이다. 한국의 풍습과 문화가 자신에게 너무나 잘 맞는다고 한다. 한국사람들도 좋아한 나머지 한국에 가서 공부하면서 살았으면 좋겠구, 한국 사람과 결혼도 하고 싶다고 너스레를 떤다. 한국의 풍습에 매료된 나머지 밥을 먹을 때도 한국사람들처럼 방바닥에 앉아 먹는 게 좋아서 그렇게 주저앉아 먹고, 평소에 노래와 연속극도 한국 것 아니면 듣고 보지도 않으니깐, 부모들도 '너는 전생에 한국사람이었나 보다' 라고 한단다.
대학을 가기 전, 가끔씩 만나서 한국어로 대화를 하고, 혼자 열심히 공부를 한 탓인지, 지금은 우리말로 대화하는데 불편이 없을 정도이다. 이번 기회에 한국에 대한 이런저런 많은 것을 알려주고 싶다.

15. 여 화가의 선물
2008.1.15
오늘은 담담히 알고 지내는 친구한테 몸을 휘감을 수 있는 망또 선물을 받았다. 대만서 알게된 화가인데, 공부를 하러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그 곳 대학의 학생들을 가르치며 미국서 살고 있는 친구이다.
길을 지나다 브라운과 미색으로 엮은 격자 무늬의 망또가 나에게 잘 어울릴 것 같아서 구정선물로 보냈다고 한다. 온화한 마음이 전해지는 선물로 인해 따뜻한 겨울을 맞을 것 같다.

14. 한국의 배 맛
2008.1.14
가끔 꿀처럼 단 한국의 배가 먹고 싶을 적이 있는데, 마침 경비실에서 전화가 와서 내려가 보니 배 한 상자를 친구가 갔다 놓았다. 배 한 개를 꺼내서 한 입 배어 먹는데, 한국 배를 버금가도록 맛이 있어서 놀라웠다. 이렇게 맛있는 배가 대만서 열린 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본래 대만서 생산되는 배는 너무나 단단하고 딱딱해서, 턱이 아플 정도로 씹기가 힘이 든다. 그리고 단맛도 없으니 배가 먹고 싶을 때가 있어도 손이 안 가는 과일이다.
꿀맛 같은 배 한 개를 순식간에 먹어 치운 만족감인지, 한동안 한국의 탐스럽고 먹음직스러운 배 생각은 안 날것 같다.

13. 모순 덩어리의 입
2008.1.13
요즘 들어서 몸이 점점 불어난다. 이러다간 외국사람들처럼 질뚠한 몸매로 변할 것 같은 두려움도 들고, 늘씬한 젊은이들의 몸매가 참으로 부럽기도 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간식을 안 먹으려고 노력하지만, 술 담배를 안 하는 남편은 노상 단 것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러다 보니까 아이들이 사는 집처럼 여러 종류의 과자들이 놓여있다. 찻 시간이 돌아오면, 이것저것 꺼내 놓은 달콤한 간식을 안 먹으려고 갖은 애를 쓰지만, "먹고 싶은 것 못 먹는 것도 큰 고통중의 하나"라고 먹으라고 주는 초콜릿을 하나도 아니고 2개씩 먹게 만든다.
이렇게 나가다간 젊은이들의 늘씬한 몸매는 고사하고, 배불뚝이가 되어 뒤뚱뒤뚱 걷는 내 모습이 상상이 간다.

12. 대만의 선거 날
2008.1.12
오늘 대만은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날이다. 나는 한국의 국적을 보류하느라, 이 곳서 투표 할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다. 예전부터 정치에 별다른 관심이 없으니, 투표권이 주어진다고 해도 기권을 했을 것 같다. 그러나 대만의 돌아가는 심각한 정세를 보면서, 국민 한 사람들의 지혜로운 한 표 한 표가 나라를 살리는 길이란 생각이 든다.
국민당이 대승리를 거두었고, 앞으로 정권이 바뀌게 되면 국민들의 안정된 생활이 보장되었으면 한다.

11. 눈시울이 붉어지는 연속극
2008.1.11
커피를 좋아해서 그런지 '커피 프린스 1호점'이란 한국 연속극의 제목에 눈이 번쩍했다. 4회째 보고있는 중이지만, 출연진들의 자연스러운 연기에 푹 빠져서 한시간을 보낸다. 앞으로의 스토리가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지만, 그들의 연기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게도 만든다. 그냥 살아가면서 빠져서는 아니 되는, 인정미가 흐르는 대사여서 감동을 받는 것 같다.
한국 연기자들을 아낌없이 칭찬하는 남편도, 내가 푹 빠져서 보는 드라마는 빠짐없이 보려한다.

10. 산 속의 벗꽃 숲
2008.1.10
벚꽃을 보기 위해 '벚꽃 숲'이란 곳을 갔다. 대만의 1월이면 벚꽃이 오밀조밀 피워 있는 것이 예뻐서 찾는 곳인데, 날짜를 일찍 당겨서 왔는지 나뭇가지에 듬성듬성 꽃망울만 얹혀있다.
차를 타고 40분 거리인데도 산 속에 위치한 곳이라, 공기도 신선해서 가끔씩 찾는 곳이기도 하다. 넓은 농토를 개간해서 벚꽃을 관상하면서 산책도 할 수 있게 만든 음식점이기도 하다. 아직 피지 않은 벚꽃 나무 아래서, 이 곳서 재배해서 만들었다는 산채 음식의 향취와 보이는 모든 것이 시골스러워서 정겹기만 하다.
가지 위에 듬성듬성 옹그리고 앉아 있는 벚꽃의 꽃망울이, 보름 후면 활짝 만발을 하고 손님맞이를 하겠지 하는 아쉬움을 남기며 내려왔다.

9. 인터넷에 올린 그림
2008.1.9
오늘부터 나의 그림이 인터넷에서 전시를 한다. 작년 여름부터 꾸물거리고 만든 소품이 어느새 80점이나 되었다. 인터넷에 올려 보려고 애착이 가는 그림 30점을 고르느라 고심을 하고, 또 그림과 어우러지는 선율의 음악을 결정하느라 머리가 혼잡하기도 했다. 내 손을 거쳐갔던 그림 하나하나를 컴퓨터 앞에서 클릭 하는 지금의 마음이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이 흐뭇하다.

아울러 인터넷에서 나의 그림을 보시게 되는 분들이, 잠시나마 복잡했던 마음을 고요하고 평온하게 정화시켰으면 하는 바램을 한다.

8. 찻잔 앞에서
2008.1.8
사소한 일로 하루의 일상사가 훌쩍 지나가지만, 되도록 이면 틈을 만들어서 커피나 차 마시는 시간을 즐기도록 한다. 여느 사람들처럼 커피나 차를 마셔야 정신집중이 되고 중독이 된 것은 아니지만, 그냥 찻잔 앞에 앉아 있으면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그 분위기로 인해 영감이 떠오르는 느낌이 좋아서 일 것이다. 아울러 할 일이 많아도 이 시간만큼은 만사 제쳐놓아도 될 것 같은 홀가분한 마음에서 찻 시간이 기다려진다.

7. 바나나 이야기
2008.1.7
저녁밥을 먹고 난 후, 사다 놓은 바나나 하나를 때어 먹으면서 옛 생각에 웃음이 그쳐지지가 않았다. 80년대에 이곳 대만으로 유학 와서, 가장 맛나게 먹은 과일이 있다면 바나나였던 것 같다. 어려서 바나나가 귀한 과일이고, 어디가 아파야만 한 가닥 먹어 보았던 과일이라서 그랬는지, 상점서 바나나가 보이기만하면, 기쁜 마음으로 사서 길에서 잘도 먹고 다녔다. 평소에 언어를 같이 배우면서 친하게 지낸 동남아 등지의 화교들과 과일을 사러 나갔다가 바나나를 길에서 먹으면, 그들의 표정이 갑자기 놀라워 지면서 이상야릇한 웃음을 짖는다. 그리곤 같이 걷는 것을 창피해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길에서 바나나를 먹었던 생각이 난다.

언어코스를 마치고, 대학으로 들어 와서도 줄창 바나나를 사서 먹고 다녔다. 우리 한국사람들은 남에게 싫은 소리나 거북한 얘기들도 툭 털어놓고 잘도 하지만, 중국계와 대만사람들은 남에 대해 싫은 소리도 꺼려하고, 상대방에 참견과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는 성격들을 가지고 있다. 어느 날 바나나를 먹고 다니는 나를 보다보다 못했는지, 반대표로 나선 친구 하나가 바나나에 관한 얼굴 붉어지는 얘기를 듣고부터는, 지금까지 밖에서 바나나를 먹지 않는다.

6. 고향 맛의 음식점
2008.1.6
스산하기 짝이 없던 날씨가 계속되더니, 오늘따라 햇살이 그득하다. 햇볕을 많이 받아야 건강해 진다는 핑계로, 작년부터 알게된 한국 음식점에 가서 점심을 먹자고 했다. 강아지도 함께 데리고 가는 것을 아는지 좋아라 한다. 음식점 이름이 '삼원가든'이라 예전에 서울서 가 보았던 음식점과 관계가 있나 했더니, 서울은 언니가 하고 대만은 동생이 한다고 한다. 한국서 오신 조리장이 직접 음식을 만들어서 그런지, 그 곳서 만든 맛깔스러운 반찬이 먹고 싶을 적이있곤 한다.
그래서 먼 거리인데도 가끔씩 찾기는 하지만, 대만 사람들처럼 갈비를 시켜서 먹는 것도 아니고 간단한 비빔밥이나 냉면, 육개장을 한 그릇씩 시켜서 먹는데, 내가 한국사람인 것을 알고는 기본으로 나오는 반찬이 아닌데도 생굴무침이나 백김치, 도라지 생채,,을 특별히 내 오신다. 항시 맛있게 먹으면서 한편으론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 곳이기도 하다. 오늘은 어묵이 들어간 매콤한 떡볶이를 시켜서 맛나게 먹었다. 그리곤 여 주인의 감각 있는 안목으로 꾸며진 뒤뜰의 정원을 거닐면서 받는 부드러운 햇살이 유난히 따사롭다.

5. 배를 잡게 만드는 춤
2008.1.5
평소에 운동의 중요함을 알지만, 시간을 내어 몸을 움직인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이 곳 대만은 스쿠터가 세계에서 가장 많이 다니는 나라라서 그런지, 거기서 뿜어내는 매연 때문에 밖에서 운동하는 것은 생각지도 말아야 한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언제든지 자유자재로 경쾌한 음악을 틀어 놓고 집에서 춤을 추는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 남편의 춤은 아무리 막춤이라 해도 너무나 도가 지나 치다보니, 춤을 출 수도 없게끔 배를 잡고 웃어야만 했다. 그러던 것이 몇 해가 지난 지금은, 춤 솜씨가 틀이 잡혀서 그런지 젊은이들과 어울려 춘다고 해도 그럴듯해 보여질 것 같다. 이렇게 땀을 내면서 하루에 두 차례씩, 20분간 격식 없이 몸을 흔들고 나면 무거웠던 몸과 마음이 가뿐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4. 인터넷 전시 준비
2008.1.4
작년 5월, 서울의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 아트 박람회에서 연 2틀간 작품 감상을 할 기회가 있었다. 국내외 작가들의 혼을 불살라 만든 작품들을 대하면서, 그림을 그린다는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박람회 장을 나오면서, 직업적인 화가로 몸에 밴 기술을 발휘한 것이 아닌, 그들의 숨결과 엄숙한 표현들이 융합된 작품들 앞에서 발길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작년 하반기는 일상사에서 벌어지는 복잡 미묘한 마음을 안으면서 그림에 푹 빠져 지냈다. 그간 전시와 함께, 내 생활의 흔적이랄 수도 있는 일부의 그림들을 틈틈이 인터넷에 올려왔다. 새해 들어 4번째 맞는 인터넷 전시를 준비하는 지금의 부산떠는 마음이 그냥 좋기만 하다.

3. 강아지 생일 카드
2008.1.3
아침에 일어나 보니 화장대 위에 카드가 놓여있다. 그제서야 기르던 강아지의 생일임을 알았다. 그래서 곤히 자고 있는 강아지를 깨어 뽀뽀를 해주고, 개뼈다귀도 주면서 미안한 마음을 표시했다. 그동안 10년 넘게 동네 아이들과 함께 강아지 생일을 차려주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같이 살던 아파트 아이들도 한집한집 다른 곳으로 이사들을 가고, 아이들도 점점 커가고, 새로 사귄 꼬맹이들이 몰려오면 소란을 피우고 정신을 빼어내서, 강아지를 더 괴롭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그간의 즐거웠던 생일을 막을 내렸다. 그리곤 두 해를 조용히 보내 주었다.
이번 년도는 뭐가 바쁜지 정초부터 강아지 생일을 깜박 잊어버리고 말았다. 생일을 잊은 것을 안 남편은, 새벽에 일어나서 15살을 맞는 강아지 사진을 카피해서, 빨강 골판지에 사진을 부쳐 귀여운 글을 적어 놓았다. 많은 세월을 강아지로 인해 기쁨과 슬픔도 잇따랐지만, 앞으로도 이렇게 같이 지내왔던 세월만큼, 15년만 더 지냈으면 하는 바램이 커진다.

저녁식사를 하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이사를 간 동네아이가 강아지 생일을 잊지 않고, 예전 즐겁게 지내왔던 생각에 전화를 했다고 한다.

2. 작은 생명 앞에서
2008.1.2
강아지를 운동시키러 나갔다가 돌틈을 비집고 피어난 여린 풀꽃을 쪼그리고 앉아서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가냘프게 흔들리는 작은 잎이 너무나 안쓰럽고 기특해 보인다. 손끝으로 만지작거려 보고 싶었지만, 내 손길이 닿으면 여린 잎이 갈라지고 상처가 날 것 같아 그러한 마음을 접었다. 그리곤 왼지 모르게 돌틈 밑이 궁금해서, 숨을 죽여가며 묵직한 돌을 살짝 들어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풀꽃의 뿌리가 밑기지 않을 정도로 사방으로 퍼져, 흙 속을 단단히 메우고 있었다.
그 하늘거렸던 작은 풀꽃 하나에 이렇게도 많은 뿌리가 내려져 있는지 몰랐다. 돌과 흙에 엉켜 어느 장소도 마다하지 않고, 당당히 피워있는 작은 생명 앞에서 많은 생각을 가지게 한다.

art-show-1
2008.1.2
강아지를 운동시키러 나갔다가 돌 틈을 비집고 피어난 여린 풀꽃을 쪼그리고 앉아서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가냘프게 흔들리는 작은 잎이 너무나 안쓰럽고 기특해 보여서, 손끝으로 만지작거려 보고 싶었지만, 내 손길이 닿으면 여린 이파리가 갈라지고 상처가 날 것 같아 그러한 마음을 접었다. 그리곤 왼지 모르게 돌틈 밑이 궁금해서, 숨을 죽여가며 묵직한 돌을 살짝 들어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풀꽃의 뿌리가 밑기지 않을 정도로 사방으로 퍼져, 흙 속을 단단히 메우고 있었다.
그 하늘거렸던 작은 풀꽃 하나에 이렇게도 많은 뿌리가 내려 있는지 몰랐다. 돌과 흙에 엉켜, 어느 장소도 마다하지 않고 당당히 피워있는 작은 생명 앞에서 많은 생각을 가지게 한다.

生活小品-1
2008.1.1
또 다시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한다. 이번 년도는 좀 느긋하고 차분하게 세상을 바라다 볼 수 있는 눈을 가졌으면 하고 생각해 본다. 많은 세월을 대수롭지 않은 작은 일에 흥분하며, 안절부절못하던 마음에서 벗어나, 모든 사물을 바라보는 눈과 마음이 초연해 졌으면 하는 바램을 이 새해에 해 본다.


그림 속의 무당
그림 속의 무당
고연정

나는 요즘, 민간 신앙에서 쓰이는 부적이나 종교적인 서적 또는 제례 용품으로 태우는 종이를 뜯어서 그림에 부치는 작업을 한다. 그리곤 어렸을 때 자주 보아 온 무당들이 신명나게 추던 무당춤을 연상하면서, 화면의 공백을 고저 장단의 울림이 있는 노랫가락처럼 메워 나간다. 이렇게 메워 나가다 보면 나의 손은 작품에 고정시켜져 있고, 나의 영혼은 어느새 굿판이 열리는 내 어렸을 때 동네 집으로 달려간다. 구름 떼처럼 모여든 구경꾼들을 비집고 무당의 얼굴을 빠끔히 들여다본다. 빨강, 노랑, 파랑의 선명한 색으로 만든 무당 옷을 입고, 머리 위에 꿩의 깃털 같은 깃발을 달아 쓰고, 손에는 갖은 방울과 이상야릇한 모양새의 칼을 들고 서 있는 무당의 모습이 조금은 섬뜩하기도 하고, 위엄도 있어 보였던 생각이 난다.